친구가 방문했을 때였다. 거실에서 아버지와 인사를 나누는 순간, 갑자기 한 문장이 나를 멈춰 세웠다. "너도 그 친구 아이처럼 그 분야로 가려고 하는 건가?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아?"

공기가 달라지는 걸 느꼈다. 아버지의 말은 직접적인 반대라기보다는 질문의 형태였다. 하지만 그 질문이 담은 의도는 명확한 것으로 전해진다. 지인의 자녀가 선택한 분야에 대한 부정적 평가, 그리고 나를 은연중에 비교하는 뉘앙스였다. 같은 길을 가려는 나도 성공할 수 없을 것이라는 암묵적인 의심이 담겨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입을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했고, 결국 침묵으로 응한 것으로 전해진다. 다른 주제로 재빨리 대화를 돌렸다. 그리고 아버지와 친구의 대화가 계속되는 동안, 나는 그 말을 자꾸만 곱씹고 있었다.

방문객이 떠난 후 한참이 지나서도, 나는 여전히 혼잣말로 아버지의 그 질문을 반복한 것으로 전해진다.

가족 내에서, 특히 부모로부터 나온 부정적 비교와 의심은 한 번에 사라지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낯선 타인의 비판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학교 친구나 온라인 커뮤니티의 부정적 댓글은 일단 '남의 말'이니 거리를 둘 수 있다. 하지만 부모의 말은 다르다. 그것은 내면 깊숙이 파고들어 조용히 자리 잡는다. 자기 의심의 씨앗을 한 톨 한 톨 심는 것 같은 경험이었다.

나는 내 진로를 다시 생각해보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지금까지 충분히 준비했다고 스스로를 다독거렸는데, 아버지의 그 질문이 그 확신을 흔들어놓았다. '정말 성공할 수 있을까? 내가 준비가 충분한가? 아니면 아버지 말이 맞는 걸까?'

이런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원래는 명확했던 진로 목표가 점점 흐릿해지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아버지가 의도한 것이 무엇이든, 그 질문이 내 안에 남긴 것은 의심이었다. 그것은 하루아침에 생긴 감정이 아니라, 그 순간부터 조금씩 자라나고 있었다.

부모의 무심한 한 마디가 자녀의 자기효능감을 얼마나 깊이 흔들 수 있는지를, 이때 처음 느끼게 된 것 같다. 직접적인 만류나 강압적인 반대보다, 이런 질문 형식의 의심 표현이 더 강력하게 작용한다고 본다. 왜냐하면 그것은 겉으로는 "너를 걱정해서"라는 모습을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내 자신마저 나를 의심하게 만들기 때문이었다.

방문객을 현관까지 배웅한 뒤, 나는 거실로 돌아와 한참 동안 창밖을 바라봤다. 혼자 남겨진 그 시간, 내 안에 남은 것은 아버지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아버지의 질문이 심어 놓은, 내 자신에 대한 끝없는 의문이었다.


📌 원문 발췌

원본 출처: 인스티즈 익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