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초 중국 ***의 주점. 한 조선 사신이 목격한 장면은 당시로서도 흔하지 않은 일이었다. 무슬림 상인이 돼지고기 요리를 거부하고 있었다. 조선 사신단이 외교 활동으로 중국에 파견되는 것은 정례였지만, 이 거부 행동의 진짜 이유를 아는 사람은 드물었다. 음식을 거절하는 것이 어떤 종교적·문화적 배경을 가졌는지 알 길이 없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1804년 1월 12일. 동지사 ***은 자신의 기록에 이 장면을 담았다. 그가 내린 해석은 흥미롭다. 무슬림들이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이유를 '저팔계의 후예 때문'이라고 설명한 것으로 보인다. 서유기에 등장하는 돼지 형상의 캐릭터, 즉 저팔계를 자신들의 조상으로 경배한다는 논리였다. 황당해 보이는 해석이지만, 이 사신은 진지했을 것으로 보인다.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으로 낯선 관습을 설명하려던 진지한 노력이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왜 이런 해석이 나왔을까. 당시 조선의 지식층이 서유기를 전혀 모르지는 않았다. 명나라 때 지어진 이 소설은 이미 조선 문인 사이에서 널리 읽힌 고전 문학이었다. 필사본도 유통 중이었고, 교양 있는 지식인이라면 대강의 줄거리를 알고 있었다. 서유기의 캐릭터, 특히 저팔계라는 돼지 형상의 인물도 그들에게는 이미 친숙한 상(像)이었다. 하지만 이슬람의 종교 율법, 특히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할랄 금기는 사정이 완전히 달랐다.
조선 시대에는 이슬람 음식 금기를 체계적으로 배울 경로가 거의 없었다. 주입적 이슬람 교육 기관도 없었고, 그러한 종교 관습을 소개하는 문헌도 조선에서는 접하기 어려웠다. 외국 상인단이 음식을 거절하는 현상을 마주칠 수는 있어도, 그것이 어느 종교의 율법에서 비롯된 것인지, 어떤 신학적 배경이 있는지 아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사신단의 통역관이나 외교담당자들도 그 이유를 정확히 설명할 능력이 없었을 가능성이 높다.
주점에서 마주친 무슬림의 음식 거부는 분명 어떤 이유가 있어야 한 것으로 전해진다. 사신 ***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 중에서 그 설명을 찾으려 한 것으로 전해진다. 돼지라는 시각 정보 하나, 서유기라는 하나의 이야기가 전부였다. 두 가지를 연결하는 논리는 그의 관점에서 매우 합리적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만약 저팔계 숭배 종교가 실제로 있다면, 그들이 돼지고기를 거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까. 그 결과가 '저팔계 후예설'이었다.
이는 단순한 오류가 아니라 인간이 낯선 것을 마주할 때 작동하는 인지의 기본 구조다. 모르는 것을 아는 것으로 설명하려는 본능인 것으로 보인다. 역사적 거리가 2세기 이상 떨어진 지금도 우리는 비슷한 번역을 시도한다. 다른 문화, 낯선 관습 앞에서 무의식적으로 우리가 아는 프레임을 씌운다. 우리의 배경지식으로 그들의 행동을 해석한다. 때로는 우연히 맞고, 때로는 완전히 틀린다. 이해응의 저팔계 해석은 그 인지적 한계를 가장 명확히 드러낸 역사적 순간인 것으로 보인다.
📌 원문 발췌
주점에서 목격한 무슬림이 돼지고기를 멀리하던 모습을 소개했으며, 무슬림들이 서유기의 '저팔계'를 조상으로 섬기기 때문에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원본 출처: 루리웹 베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