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지지의 무게

한 정치인(***로 표기)을 15년간 지지해온 시간. 그것은 결코 가벼운 마음이 아니었다. 비난하는 사람들과 만나면 싸웠고, 사실관계를 하나하나 따져가며 설득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렇게 노력했던 세월이 15년이었다.

단순한 정치적 호감만은 아니었다. 이 정도의 열정으로 정치에 참여한다는 것은, 자신의 신념을 사회 속에 구현하려는 책임감의 표현이었다. 아들에게, 그리고 주변인들에게까지 "정치에 관심을 갖고 투표를 잘하면 세상은 좋아진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확신을 갖고 있었다.

아들과 주변인에게 전했던 말의 간격

그 말들이 이제는 돌아와 얼굴을 따갑게 친다. 아들의 무관심한 태도를 바꾸려고 노력했던 그 순간, 주변인들을 설득했던 그 순간들이 지금은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거봐, 정치를 열심히 하면 세상이 좋아져"라는 말을 했던 자신의 체면이 한순간에 흔들리는 경험을 하고 있다.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라는 표현이 정확해 보인다. 원본 기사도 확인하지 않은 채 누군가를 비난했던 이들과 싸웠던 시간들이 공허하게 느껴진다. 그 과정에서 얻었던 확신과 정당성이 순간적으로 흔들린다.

같은 편의 배신이 더 아프다

하지만 가장 큰 상처는 외부에서 오지 않았다. 같은 팀이라고 믿었던 이들로부터였다.

존경해마지않던 *** 선생을 가볍게 조롱하기 시작한 같은 편의 인물들. "***을 외치며" 변절의 깃발을 들었던 이들. 특히 ***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인물들이 줄줄이 옛 맹세를 접으며 조롱의 대상으로 바꿔 말하는 장면을 보게 된다.

의리가 무너지는 모습이었다. 한때 함께했던 공동체의 기본값이던 '서로를 존경한다'는 약속이 깨어지는 순간이었다. 같은 입장의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조롱과 비난은, 외부의 적대적 평가보다 훨씬 깊은 상처를 남기는 것으로 보인다.

공동체라는 것은 이런 관점에서 보면, 단순한 지지자 모임을 넘어선다. 함께 싸웠고, 함께 미래를 만들겠다고 다짐한 집단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 집단 내부에서 일어나는 변절과 조롱은, 외부의 비난처럼 '우리가 극복해야 할 장애'가 아니라 '우리의 기반이 무너지는 경험'이 된다.

위에서도 방관, 아래에서도 줄서기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데도, 지도부는 이를 방관하는 것 같다는 인상을 떨칠 수 없다. 의리가 무너지는 것을 보고도 아무 말도, 행동도 없다면, 그것도 일종의 선택이 아닐까.

한편 의원들로 불리는 이들은 권력에 빌붙으며 지지자들의 목소리는 외면한다. 함께했던 사람들의 신념을 저버리고, 다만 권력 중심으로만 움직이는 모습이 보인다. 이것도 의리의 붕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래에서는 열성 지지자들이 외면당하고, 위에서도 책임감 있는 리더십을 찾기 어렵다.

열성 지지자가 정치를 거부하는 아이러니

결국 정치를 멀리하고 싶어진다. 자신을 가장 열렬한 응원자로 만들었던 그 신념과 투자가, 이제는 정치 그 자체에 대한 혐오로 돌아서고 싶게 만든다. 이것은 역설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이 같은 아이러니가 한 사람의 개인적 경험에만 머물지 않는다면? 팬덤 정치 공동체 곳곳에서 반복되고 있는 패턴이라면? 열성 지지자들이 정치에서 등을 돌리는 현상은 단순한 개인의 감정 변화를 넘어서 보인다. 공동체의 자정 능력, 그 기반의 의리와 존경이 얼마나 빨리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신호가 아닐까.

의리도 없고, 존중도 없고, 매너도 없이 진행되는 정치의 장. 이 정도면 "정치는 참 더럽다"는 평가가 나올 만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 원문 발췌

아들에게 '정치에 관심 갖고 투표 잘하면 세상은 좋아진다'고 했는데 지금은 뒤통수를 맞고, 같은 편이 존경도 모자란 *** 선생을 껌 씹듯 조롱하네요.

원본 출처: 딴지일보 자유게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