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을 취미로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휴일이면 산으로 나가고, 그곳에서 해먹을 매달고 나눠 먹던 음식 중 하나가 바로 고추장 찌개였다. 야외에서 끓인 그 맛이 자꾸만 그리워지던 차에, 한 해가 지나고 또 지나니 갑자기 그 음식이 생각났다. 그날 저녁, 마침내 집에서 다시 끓여보기로 마음먹었다.

재료를 챙기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고추장, 간장, 고기, 야채와 함께 감자도 준비한 것으로 전해진다. 냉장고에 남은 것들을 꺼내고, 마트에 들려 부족한 것들을 샀다. 감자는 그럭저럭 큼직한 것으로 고르기로 한 것으로 전해진다. 찌개에 들어갈 감자는 한두 덩어리만 있어도 충분하니까. 가장 먼저 시작해야 할 일은 껍질을 벗기는 것이었다.

주방에서 감자칼을 꺼내 들었다. 물로 잠시 헹굴고 감자에 대고 벗기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감자칼이 말을 듣지 않는 것 같았다. 한 번, 두 번, 세 번 같은 자리를 반복해서 긁어야 간신히 얇은 껍질 조각이 떨어져 나갔다. 도구가 감자 위에서 미끄러지거나, 겨우 표면만 스친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하나하나 벗겨가며 감자 하나를 다 손질하려니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았다.

불편함에 한두 번 투덜대던 중, 일단 다른 방법을 시도해보기로 한 것으로 전해진다. 손잡이가 있는 일반 식사용 수저를 집어 들고 감자를 긁어보기로 한 것. 신기하게도 수저의 모서리가 감자 껍질을 더 효율적으로 벗겨냈다. 밀어내듯이 사용하니 감자칼로는 10분이 걸릴 작업을 수저로는 몇 분 만에 끝낼 수 있었다. 처음엔 "수저가 이렇게 잘 되다니" 싶었지만, 곧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주방 도구의 수명은 눈에 띄지 않는 방식으로 다가온다. 감자칼 같은 필러는 날이 조금씩 무뎌져도 완전히 망가지지 않으면 계속 쓸 수 있다. 칼날이 부러진 것도 아니고, 손잡이가 떨어진 것도 아니고, 녹이 슬었던 것도 아니니까. 사용자 입장에서는 "이 정도면 아직 쓸 만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자꾸만 반복된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아, 이 도구 진짜 못 쓸 지경이네" 하는 순간이 온다. 그게 바로 그날이었던 셈인 것으로 보인다.

수저로 감자 껍질을 벗겼다는 건 사실 중요한 신호였다. 새 감자나 삶은 감자의 경우 수저로도 껍질이 어느 정도 벗겨진다. 하지만 생감자처럼 딱딱하고 단단한 것을 수저만으로 벗기는 건 오히려 힘이 더 든다는 게 알려진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번엔 수저가 훨씬 나았다는 건, 감자칼의 날이 제 본래 성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 아닐까.

그 이후로 자꾸만 생각났다. 새 감자칼을 사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지금껏 이 도구로 버텨왔으니 앞으로도 며칠 더 참고 쓸 수는 있을 거다. 하지만 요리를 할 때마다 이런 불편함을 반복한다면, 차라리 새 것으로 갈아탈 때가 된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소소한 주방 도구 하나가 주는 스트레스와 불편함이, 예상보다 훨씬 크다는 걸 그 순간 깨달을 수 있었다. 아마도 곧 장바구니에 새 감자칼을 추가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도 함께.


📌 원문 발췌

감자칼로 벗기는데 잘 안벗겨지네요. 수저로 벗기는 것이 더 편합니다.

원본 출처: 클리앙 모두의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