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삿날이 평일에 걸리면 맞벌이 여성에게는 연차 소진 아니면 야근 이탈 중 하나를 강요받는 경험이 된다. 한 누리꾼의 사연을 통해 이 문제가 개인 불운이 아닌 구조적 패턴임을 볼 수 있다.
직장에 제삿날 야근이 예정돼 있었다. 일이 늦게 끝날 것 같다고 미리 통보한 것으로 전해진다. 상황을 명확히 설명했음에도 시어머니는 "그래도 빨리 와야 한다"고 독촉했다고 한다. 여기서 생기는 압박감은 단순한 일정 충돌을 넘어선다.
직장은 야근을 기다리고 있다. 시댁은 여성의 손을 기다리고 있다. 둘 다 '필요'라고 외친다. 당사자는 양쪽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는 처지가 된다. 이것이 맞벌이 여성이 마주하는 현실로 보인다. 경제 활동에 참여하면서도 가정 내 전통적 역할은 그대로 남겨두는 이중 기준인 것으로 보인다.
결국 야근을 중간에 빠져나왔다. 시댁에 도착했을 때부터 일이 시작됐다. 혼자 음식을 차렸다. 혼자 설거지를 한 것으로 전해진다. 제삿상을 준비하는 전 과정이 당사자의 몫이었다. 집에 돌아온 시간은 자정을 훨씬 넘었다. 이미 진이 빠진 상태였을 것으로 보인다.
남편은 어디에 있었나. 이것이 가장 아픈 질문인 것으로 보인다. 제삿상이 차려지는 과정, 음식이 준비되는 과정, 상 위의 모든 것이 정렬되는 과정에서 남편의 손길은 보이지 않는다. 같은 시댁 출신이고 제사 당사자 중 한 명이면서도, 남편은 준비의 바깥에 있었다. 이것이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가정이 많다는 점이 더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당사자가 자정을 넘겨 집에 도착했을 때 남편은 이미 잠이 들어 있었다. 깨어났을 때 남편의 첫 말은 "고마웠겠지"라고 한다. 감사가 아닌, 마치 당연한 일을 해낸 것처럼 대하는 톤인 것으로 보인다. 같은 맞벌이 부부인데 왜 노동의 무게가 이렇게 불균형한지는 설명되지 않는다. 당사자는 이 순간 스스로에게 물었다고 한다. "이게 결혼한 여자의 인생인가."
시어머니도 이 상황을 문제 삼지 않았다. 대신 "맞벌이라고 했더니 다 그렇게 산다"고 말했다고 한다. 위로처럼 들리는 이 한마디는 사실 가장 무거운 문장인 것으로 보인다. 아무도 자신의 상황이 변할 수 있다고 말해주지 않는다.
'다 그렇게 산다'는 말이 내포하는 의미를 생각해보면, 겉으로는 위로지만 실상은 "이건 정상이고, 피할 수 없다"는 뜻인 것으로 보인다. 개인의 피로와 불공평을 구조적 필연성으로 정당화하는 말인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반복되면 당사자는 자신의 상황을 '문제'로 보지 않고 '숙명'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렇게 수십 년이 흐른다.
제사 노동은 왜 변하지 않을까. 일하는 여성이 증가했지만, 제삿날 음식 준비와 정리는 여전히 여성의 몫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연차를 써야 하거나 야근을 중단해야 한다는 압박도 반복된다. 직장인이 되든 말든 '며느리'로서의 역할은 여전하다는 뜻인 것으로 보인다.
이 글에 달린 댓글들에서는 비슷한 경험담이 이어졌다고 한다. 맞벌이 여성들이 제사 철에 연차를 쓰거나, 야근을 이탈하거나, 밤새 음식을 차리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는 것으로 보인다. 당사자의 경험이 특수한 것이 아니라 광범위한 패턴이라는 인식이 생기고 있다. 개별 상황이 모여 보편적 문제로 이름 붙는 순간, 비로소 변화의 가능성도 생긴다는 생각도 나온다.
📌 원문 발췌
결국 야근 중간에 빠져나와서 시댁 갔음. 가서 혼자 음식 차리고 설거지하고 집에 온 시간이 자정이 넘었어. 남편은 고마웠겠지 하고 자더라.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