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법제도의 역사에서 자주 지적되는 설계의 문제가 있다. 바로 수사권과 기소권이 동일한 기관에 집중되었다는 점인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권력 분립의 원칙에서는 권력을 분산시켜 상호 견제를 꾀하는 것이 기본인데, 검찰이 수십 년간 이 두 권한을 동시에 행사해온 구조는 그 견제 메커니즘이 사실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 구조 속에서 무엇이 벌어져왔는가. 한 익명 게시판의 글쓴이는 구체적인 사례를 들며, 표적 수사의 패턴을 지적한 것으로 전해진다. 누군가 의혹을 제기하면 그 의혹이 부풀려지고, 누군가 고발하면 검찰이 나선다. 증거가 명확하지 않아도 수사는 계속된다. 주변인을 압박하고, 경제 활동 흔적 하나까지 샅샅이 뒤진다. 이 과정에서 사소해 보이는 쟁점도 언론에 흘러나가고, 법정 판결이 나기도 전에 한 개인의 신뢰와 경력이 무너지는 결과로 이어진다.
그 사례로 언급된 이들은 정치권의 특정 진영에 속한 인물들인 것으로 보인다. 전 대통령 ***, 전 총리 ***, 전 장관 *** 등이 검찰 수사의 대상이 되는 과정 속에서, 증거의 확실성보다 여론의 흐름이 우선되었다는 지적인 것으로 보인다. 저술가 ***의 경우, 특정 방송사 기자와의 녹취록이 공개되지 않았다면 유사한 상황에 처했을 가능성을 언급한 이도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같은 논리가 역방향으로도 작동했다는 것으로 보인다. 검사 또는 검사 가족이 의혹의 중심에 놓일 때는 어떻게 되었는가. 불기소 처분이 내려지거나 약식 기소로 넘어갔다. 여론의 압박이 있어도 최소한의 수준에서만 처리되는 일이 반복됐다는 평가다. 그 사례로 들린 인물들—***과 ***와 ***—은 이러한 '이중 기준'의 구체적 증거로 제시되었다.
이렇게 되면 일개 공무원이라도 '영감님' 소리를 듣게 되고, 어느 자리에든 특별한 대접을 받는 문화가 만들어진다. 퇴직 후에도 '전관예우'라는 관행이 이어지면서, 검찰의 권력은 조직을 벗어난 후에도 민간 영역에서 영향력을 유지한다는 점은 권력 구조 자체가 연장되는 형태로 볼 수 있다.
검찰 개혁을 두고 '보완수사권' 같은 기술적 논의가 오가지만, 근본적인 질문은 단순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검찰이 '직접' 수사에 나설 수 없는 구조를 만들 것인가, 아니면 계속 현재의 틀을 유지할 것인가. 설령 0.001%의 가능성이라도, 조직이 다시 그 권한을 행사하려 할 때 제도적 장벽이 없다면 언제든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다.
이를 어떻게 보느냐는, 결국 우리 사회가 권력의 집중과 견제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는가의 문제로도 읽힌다.
📌 원문 발췌
뚜렷한 증거가 나오지 않으면 나올 때까지 주변을 털고, 사돈의 팔촌에 자주 가는 음식점까지 뒤집습니다. 그러다 조금이라도 이슈가 될 만한게 나오면 근거가 있건 없건 언론에 흘리고,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한 사람의 삶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목격했습니다.
원본 출처: 클리앙 모두의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