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가 임신한 상태에서 결혼을 하게 되면서 글쓴이(당시 대학생)는 예기치 않게 같은 지붕 아래 살게 됐다. 새로운 가족 구성원의 탄생이 임박한 상황에서는 보통 역할 분담이나 육아 계획이 미리 세워져야 하지만, 이 집에서는 그런 것들이 선행되지 않았다. 형부는 일한다는 이유로 아이 양육에서 거의 손을 뗐고, 언니는 약속이 많다며 자주 외출한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외출할 때마다 술을 마시고 돌아오는 패턴이 반복되자, 집에 있던 엄마와 글쓴이가 아이의 모든 것을 맡게 되는 구조가 자연스럽게(그리고 불가역적으로) 만들어졌다.
에디터 관점에서 이 상황을 분석하면, 임신과 결혼이라는 사건이 '합의 없는 비공식 보호자 체계'를 낳은 것으로 보인다. 누군가 반드시 돌봐야 할 아이가 있는데 법적·도덕적 보호자가 그 책임을 명시적으로 거부했으니, 집의 다른 구성원—이 경우 성인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대학생인 동생—에게 책임이 자동으로 전가될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으로 보인다.
글쓴이가 조카를 돌보는 와중에 조카가 다친 일이 있었다. 이를 글쓴이의 부주의로 단정한 언니는 글쓴이의 머리채를 잡았다. 빨래를 제때 해주지 않았다는 이유로는 침을 뱉었다. 이유식을 데우고 있던 글쓴이에게 언니는 뜨거운 음식을 억지로 먹이려 했다고 몰아붙이며, 손에 들고 있던 접시를 글쓴이의 얼굴에 던졌다.
이 같은 신체적 폭력이 고립된 사건이 아니었다. 엄마가 있는 자리에서도 언니는 형부를 향해 거친 욕설을 퍼부었고, 화가 극도에 달하면 물건을 집어던졌으며, 형부를 손으로 때렸다. 심지어 엄마의 손을 물기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장면들이 반복될 때마다 글쓴이와 엄마는 조카를 보호하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가정 내 갈등이 집중호우처럼 내려치는 환경에서, 그들은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조카 양육이라는 책임만 지우는 모순을 감내해야 한 것으로 전해진다.
견디다 못한 글쓴이는 3개월 전 집을 나왔다. 처음엔 엄마와 함께 떠나려 했지만, 엄마는 자신은 직장이 있으니 괜찮다며 글쓴이가 먼저 나가기를 권했다(혹은 사실상 강요했을 수도). 이렇게 반쪽짜리 독립을 하게 된 글쓴이에게, 자취방 생활은 처음부터 순탄하지 않았다.
짐을 옮기는 과정에서 엄마의 차를 빌렸고, 빌라 주차장에 잠시 세웠다. 그 차의 등록증에는 언니의 휴대폰 번호가 적혀 있었는데, 주차장 환경에서 그 번호가 노출되는 일이 생겼다. 나중에 언니가 차를 빼달라는 전화를 받으면서 글쓴이의 주소가 의도치 않게 알려진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은 단순한 개인정보 유출을 넘어, 글쓴이가 구축하려던 '물리적 거리'를 무너뜨리는 기점이 된다.
주소를 알게 된 언니의 방문은 예정되지 않은 것들이었다. 술을 마시고 자취방을 찾아오는 식으로, 언제든 문을 두드렸다. 그때마다 조카를 데려왔고, 글쓴이 방에 조카를 두고 자신은 나갔다. 글쓴이의 자취방이 임시 조카 보관소처럼 기능한 셈인 것으로 보인다. "집을 나왔는데도 육아의 연장선에 있었다"는 글쓴이의 표현은 이 상황의 본질을 정확히 포착한 것으로 보인다.
어느 날 복도에서 소동이 일어났다. 술 취한 언니가 큰 목소리로 울고 소리를 질렀고, 조카도 울음을 터뜨렸다. 이웃 주민들이 신고했고, 경찰이 출동해 일을 수습한 것으로 전해진다. 글쓴이는 귀가 조치를 받았다. 하지만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그 이후에도 언니의 예기치 않은 방문은 계속됐다.
도어락을 확인했을 때 라이터로 지져진 자국이 남아 있었다. 얼마나 격렬한 감정을 드러낸 흔적인지 일목요연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편 누군가는 엄마에게 글쓴이가 남자친구와 동거하다가 가족을 버렸다고 말했는데, 글쓴이에게는 남자친구가 없었다. 거짓된 정보가 엄마 귀에까지 전해지면서, 글쓴이는 가족 내에서 한 번 더 손상된 이미지로 낙인찍혔다.
이제 글쓴이는 가족과의 모든 인연을 끊고 싶은 마음이 든다. 하지만 쉽지 않다. 엄마의 존재가 마음에 걸린다. 엄마는 여전히 그 집에 남아 있고, 언니의 삶이 계속되는 그곳에서 버텨내고 있다. 임신·결혼·육아의 전 과정에서 엄마도 언니와 마찬가지로 글쓴이의 짐이었으면서, 동시에 글쓴이를 함께 떠받치고 있던 사람이었다. 엄마를 버릴 수는 없지만, 가족과 떨어져야 한다는 생각도 지울 수 없다. 이 모순 속에서 글쓴이의 독립은 심리적으로 완성되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자취방은 물리적 거주지일 뿐, 정서적으로는 여전히 그 가정의 일부인 듯한 미완성의 상태. 어디로도 나아가지 못하는 현재를 견디고 있다.
📌 원문 발췌
조카보다가 모르는새에 다쳐서 언니한테 머리채 잡히고 빨래 제대로 안해놨다고 거기 조카 옷 많은데 애 입힐거없다고 저한테 침뱉고 이유식 식히고 있었는데 뜨거운데 먹이려했다고 제 얼굴에 던지고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