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티팝 열풍 속에서 일본 70~80년대 음악에 빠진 한 리스너가, 역으로 당시 한국 가요를 탐색하게 되었다고 한다. 단순한 음악 호평을 넘어 '개성이 생존 조건이던 시대'를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일본 음악의 기술적 완성도는 분명하다. 악기 연주와 음반 제작 수준이 세련되어 있고, 지금 들어도 음향적으로는 훌륭하다. 그렇지만 보컬 표현의 폭은 상대적으로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 70년대 여성 가수들의 다양한 음색과 강도, 정형화된 범주를 벗어나는 개성과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와 ***의 조합이 특별한 이유가 여기 있다. 서양 록 음악의 기반 위에 명확하게 한국적 정서가 녹아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의 보컬에서는 한국 전통 음악의 '흥'을 현대 악기 위에 얹은 듯한 독특한 질감이 감지된다.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가 특히 그렇다. 가사는 트로트에 가까우면서도, 악기 배치와 리듬은 명백히 록 음악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 1969년도의 이 곡이 이러한 장르 혼합을 시도할 수 있었던 배경이 흥미로운데, 70년대 한국 가요 시장이 상대적으로 규제가 적고 실험적이었다는 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늦기전에'는 ***의 호소력 짙은 보컬 특징이 더욱 선명하다.

***의 '함께 춤을 추어요'에서는 허스키한 음색이 돋보인다. 이런 질감의 보컬을 현대에 찾기 어려운 이유는, 당시 가수들이 스튜디오 녹음뿐 아니라 라이브 악단과의 직접 협연을 통해 음성을 다듬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유튜브에 올라온 라이브 무대 영상을 보면, 현악기 악단과 함께 무대에 서면서 음악을 직접 구성해나가는 모습이 포착된다. 이는 현재의 음악 시스템과는 다른 방식인 것으로 보인다. 1979년 발표된 이 곡은 당시 인기를 모았고, 지금도 그 질감이 독특하다고 평가받는다.

***의 '밤차'도 1979년 당시 인기곡이었다. 이 가수의 음성은 누구도 모사하기 어려운 특징을 갖고 있다는 평가가 일반적인 것으로 보인다. 편하고 자연스럽게 들리지만, 그 밑에는 엄청난 성량과 강도가 깔려 있다. 느슨한 자세로 서 있으면서도 막대한 힘을 담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인 것으로 보인다.

80년대로 넘어가면서 음악 시장의 강도가 높아진다. 윤시내 같은 가수가 두각을 드러내는 모습에서, 70년대의 개성을 유지하면서도 더욱 강렬한 보컬로 무장하는 방향으로의 진화가 보인다. 당시 가요 시장이 '강함만 살아남는 분위기'로 진화해갔음을 알 수 있다는 뜻인 것으로 보인다.

70년대는 각 가수가 개성과 음악적 색깔을 뚜렷하게 드러낼 수 있었던 시대였던 것으로 보인다. 방송과 음반 인프라가 현재만큼 발전하지 않았기에, 라이브 무대에서의 가창력과 무대 개성이 가수로서의 생존을 결정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 결과 후속 세대가 모사할 수 없는 음악적 유산이 쌓이게 된 것으로 보인다. 요즘 음악 시장에서 가창력과 개성이 모두 높은 아티스트를 찾기 어려운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 원문 발췌

한창 씨티팝 어쩌구 할 때, 일본 70/80년대 노래를 좀 듣다가 그당시 가요도 찾아서 들어봤습니다. 눈에 띄는 음악은 + 조합: 락을 기본으로 하지만 뭔가 한국스러움이 느껴집니다.

원본 출처: 클리앙 모두의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