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익명 게시판 글쓴이가 공유한 경험담인 것으로 보인다. 등록금으로 받은 돈을 코인 투자에 집중했다가 절반 이상 손실을 입었고, 모자란 돈을 금융사 비상금 대출로 메워야 했다는 상황인 것으로 보인다. 부모님이 통장 거래 내역을 하나하나 살피던 중 이 모든 것이 발각되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두 가지 선택지를 제시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첫째는 앞으로의 등록금 지원을 완전히 끊는 것, 둘째는 그 순간 체벌을 받는 것. 글쓴이는 자신의 실수가 얼마나 무거운지 알고 있었기에 체벌을 택한 것으로 전해진다. 등록금이라는 신뢰와 돈을 자신의 욕심으로 배반했다는 죄책감이 컸던 것 같다.
그런데 체벌 후 문제가 생겼다. 신체에 남겨진 손상이 예상보다 심했다는 것으로 보인다. 검푸른 멍이 깊게 들었고, 피가 맺혀 나올 정도의 충격을 받았다. 특히 이것이 첫 체벌이었다는 점이 중요한 것으로 전해진다. 평상시 아버지는 자녀들에게 손을 댄 적이 없었다. 형을 포함해 누구도 때려진 경험이 없었다. 갑작스러운 충격 앞에 글쓴이는 생각이 복잡해지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내가 한 짓은 정말 잘못했다. 하지만 이 정도까지 맞아야 했을까?" 자신의 잘못을 여전히 인정하면서도, 그에 대한 응징으로서의 신체적 고통이 정당했는지를 묻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이 질문은 단순한 자가연민이 아니었다. 글쓴이는 전혀 다른 맥락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고 있었다.
부모님은 이미 여러 조치를 취하셨다. 글쓴이가 비상금 대출로 빌린 돈까지 전부 상환해주셨고, 손실된 등록금도 다시 지원하기로 하셨다. 글쓴이는 대신 앞으로 투자에는 절대 손을 대지 않겠다고 약속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모든 과정이 체벌 이전에 이미 진행되었다는 것이 중요한 것으로 전해진다. 즉, 경제적 손실의 변제와 신뢰의 회복은 이미 하나의 완성된 단계를 지났다. 체벌은 그 과정과 시간적으로 분리된 채 별도로 가해진 것이었다.
부모의 입장에서 본 배신감을 이해하면서도, 글쓴이는 이제 신체적 상처에 대해서는 다른 차원의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이 정도의 신체적 손상이 정상적인 범위인가? 그렇다면 내 잘못 자체와는 별개로, 아버지에게 이 부분에 대해서만 사과를 요청할 수 있을까?"
글쓴이의 고민을 읽은 댓글들도 다양한 것으로 전해진다. 몇몇 반응은 부모의 배신감과 분노가 이해는 되지만, 신체적 상해를 남길 정도의 체벌까지 필요했는지는 의문이라고 지적한 것으로 전해진다. 다른 의견들은 글쓴이가 자신의 실수를 충분히 인정하고, 경제적 책임도 받아들였으니, 이제는 순수한 신체적 손상에 대해서는 별도의 잘못을 묻는 것도 옳지 않겠냐고 제안한 것으로 전해진다.
"내가 잘못했다 = 그러므로 맞아야 한다"라는 논리가 항상 일직선이어야 할까? 과실의 무게와 응징의 강도는 따로 계산될 수 있다는 생각이 점점 분명해진다. 글쓴이는 자신의 과실에 대해서는 충분히 책임지고 있다. 대출금을 갚고, 약속을 세우고, 미안해하고 있다. 하지만 신체적으로 남겨진 멍과 피흘림은 그 과정과 별개의 손상인 것으로 보인다.
일부 부모들은 자녀의 큰 실수 앞에서 분노와 실망이 폭발했을 때 그 감정이 얼마나 강력한지 알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신뢰를 받은 자녀가 그것을 금전적 욕심으로 배반했다는 생각, 거기에 숨겨진 대출까지. 그 감정의 크기를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감정의 강도와 그에 따른 신체적 행동의 적절성은 또 다른 문제인 것으로 보인다.
글쓴이가 부모에게 사과를 요청한다면, 아마도 이렇게 말하고 싶을 것 같다. "아빠, 내가 한 짓은 진짜 미안해. 하지만 이 멍이 생기는 것까지는 내가 받아들이기 힘들어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빠가 사과해줄 수 있을까요?" 비슷한 상황에서라면, 가족들 사이에서는 어떤 대답이 나올지 궁금한 부분인 것으로 보인다.
📌 원문 발췌
맞을 때는 몰랐는데, 이렇게 멍이 심하게 들고 피까지 맺히는데 이건 내가 잘못한 거랑 별개로 너무 심한 것 아닌가 싶어서
원본 출처: 인스티즈 익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