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주기적으로 과거 발언이나 사건을 반복해서 꺼내 논쟁하는 현상이 일어난다. 때로는 이런 행위를 '파묘(과거를 파헤치는 것)'라 부르며 멈춰달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하지만 이런 호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과거를 들고나오는 이들이 있다. 왜 계속할까? 한 익명 게시판 글쓴이는 그 이유를 이렇게 진단한다. 결국 '자신이 맞다는 지적이다'고 확신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라는 지적인 것으로 보인다.
내 주장이 옳다고 생각하면, 그것을 계속 들고나와 상대방을 설득하려 한다. 하지만 중요한 질문이 하나 있다. 아무리 자신의 입장을 반복해서 말해도, 과연 그것이 설득의 효과를 낼 수 있을까? 이 질문을 던져보는 것 자체가, 진정한 합의의 첫 단계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합의'와 '통합'이 숨기고 있는 현실
합의와 통합은 일반적으로 긍정적인 단어로 받아들여진다. 그런데 이 단어들이 실제로 의미하는 바를 들여다보면 어떨까? 글쓴이가 강조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합의와 통합은 결국 상호 간의 '양보'를 전제로 작동한다는 것으로 보인다. 완벽한 의견 일치가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공감대를 좁혀 모두의 더 큰 이익을 추구하려면 각자 손해를 감수하고 양보해야 한다는 뜻인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합의와 통합은 고통을 동반한다는 현실인 것으로 보인다.
상호 양보가 없으면 협력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온라인 갈등에서는 이 양보가 빠져 있다. 각자 자신의 입장만 옳다고 생각하고, 상대방을 설득하려고만 할 뿐, 손해를 감수할 준비가 없다는 뜻인 것으로 보인다.
양보를 감수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왜 누군가는 양보를 감수할까? 손해를 자처하면서까지 타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글쓴이의 답은 간명하다. '더 큰 대의'가 있을 때만 가능하다는 것으로 보인다. 개인의 이익이나 정의감보다 중요한, 공동체 전체를 위한 더 큰 목표가 있어야만 양보를 감수할 수 있다는 뜻인 것으로 보인다.
온라인에서 과거를 계속 소환하는 행위는 어떤 입장일까? 이는 개인의 '옳음'만을 추구하는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자신의 입장을 관철하는 것이 목표이지, 공동체의 안정이나 화해 같은 '더 큰 대의'를 향해 가는 것은 아니라는 해석인 것으로 보인다.
감정의 악순환이 계속되는 구조
적대적 감정이 표현되면 그에 대한 반발이 생기고, 그 반발에 또 다른 반작용이 따라온다. 분노는 새로운 분노를 낳고, 그 분노가 다시 원래의 분노를 증폭시킨다. 온라인에서 과거를 반복해서 꺼내는 것도 이런 악순환의 연장이다는 지적이 있다. 한 번 시작된 대립은 쉽게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악순환의 고리는 더 단단해진다.
이 고리를 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단순한 방법이 있다. 그런 콘텐츠를 보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클릭하지 않고, 댓글도 달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조회수와 댓글이 늘어나지 않으면, 그 콘텐츠를 계속 만들 이유는 줄어든다. 관심 자체가 에너지가 되어 악순환을 지속시키는 구조를 차단하는 것으로 보인다.
선택의 순간에서
영화 '남한산성'에는 인물들이 생사의 갈림길 앞에서 고민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결국 이것으로 보인다. 지금 여기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온라인 커뮤니티도 비슷한 갈림길에 서 있다. 과거를 계속 파헤칠 것인가, 아니면 그 악순환에서 의식적으로 벗어날 것인가.
당장은 마주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는 판단이 있다. 이는 회피가 아니다. 오히려 순환을 끊기 위한 의식적인 선택인 것으로 보인다. 더 이상 그런 콘텐츠의 양산에 도움을 주지 않는 것, 그것이 공동체 전체를 위한 더 큰 대의로 가까워지는 길이라는 뜻인 것으로 보인다.
📌 원문 발췌
합의, 통합 이런 단어가 갖는 함의가 있습니다. 다름 아닌 양보입니다. 양보에는 나의 손해가 포함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원본 출처: 클리앙 모두의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