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의 대화가 모든 것을 바꾼다. 동생과 나눈 짧은 말이 왠지 큰 깨달음처럼 느껴진다. 그가 내게 던진 말은 이렇게 평범하면서도 파격적이었다. 삶의 궤도를 살아가면서 사람들은 자신이 변할 수 있다고 믿고 싶어 한다. 하지만 동생은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우리는 모두 타고난 본성대로 산다고. 그리고 그 본성은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는다고.
심리학 연구들은 흥미로운 결과를 보여준다. 성인이 된 이후 인간의 핵심적 성격 특질은 거의 변하지 않는다는 결과들이 있다고 전해진다. 특히 30대를 넘어서면 성격의 주요 요소들이 상당히 고착되는 경향을 보인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리가 변할 수 있다고 믿고 싶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하는 의견이 있다. 동생의 말이 설득력을 갖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본다. 사람은 자신이 맞다고 생각하고 살아간다고 여겨지고, 죽을 때까지 그렇게 산다. 변화는 미명(美名)일 뿐, 사실 우리는 계속 같은 자리에서 같은 방식으로 회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현대 문화에서는 성찰과 반성을 미덕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고, 부족한 점을 찾아 개선하라는 메시지가 넘쳐난다. 하지만 이 글 쓴이는 다른 경험을 말하고 있다. 자신을 반성할 때마다 자존감이 깎인다는 것으로 보인다. 성찰이 이루어질수록 자신을 더 못난 사람으로 여기게 된다고 표현한다. 이는 아이러니한 현상으로 보인다. 변하려는 노력이 오히려 자신을 짓누르는 무게로 작용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동생의 말이 가혹하지만 위로처럼 들리는 이유는 여기에 있을 것으로 보인다. 변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렇다면 더 이상 자신을 질책할 필요도 없다는 논리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타인의 눈에 관한 깨달음인 것으로 보인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관찰자 효과'와도 닿아 있다고 보인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기 어려운 반면, 남의 입장에서 우리를 보는 사람들은 우리를 훨씬 정확하게 인식한다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자신의 의도와 상황을 과도하게 정당화하는 경향이 있다는 지적이 있다. 하지만 타인은 우리의 행동과 패턴만을 본다. 그래서 남이 나를 보는 눈이 더 정확하다는 깨달음은 겸손하면서도 냉소적으로 들린다. 우리가 믿는 자기상(自己像)은 많은 부분 착각일 수 있다는 관찰이 이를 뒷받침한다.
이렇게 무거운 깨달음에 도달했을 때, 글 쓴이가 한 행동은 놀랍도록 일상적인 것으로 보인다. 라면을 끓여 먹는 것으로 보인다. 철학적 사유와 현실의 간극을 보여주는 이 마무리는 어떤 의미에서 완벽해 보인다. 무거운 생각들을 모두 안고 살 수도 있지만, 결국 우리는 라면을 끓이고, 밥을 먹고, 일상으로 돌아간다. 본성이 바뀌지 않는다는 깨달음도, 타인의 눈이 정확하다는 자각도, 모두 일상 속에서 흐릿해진다. 그리고 그것이 아마도 가장 인간다운 삶의 방식인 것 같다고 느껴진다.
📌 원문 발췌
사람은 결국 타고난 자기 본성대로 사는거고 죽을때까지 바뀌지않고, 세삼 남이 나를 보는눈이 더 정확한걸 알게되네요
원본 출처: 클리앙 모두의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