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 년 전 남편의 사업이 큰 위기에 몰렸을 때의 일인 것으로 보인다. 당시 친정 언니가 소유하던 아파트를 매각한 약 팔천만 원을 차입금으로 받았다. 남편은 월 이율 정도 수준의 이자를 정기적으로 돌려주겠다는 약속을 했으나, 사업의 악화로 인해 이 약속은 지켜지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 이후 약 십오 년간은 형편이 너무 어려워서 원금도, 이자도 갚을 수 없었다. 이 기간 동안 언니와의 관계는 점점 멀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이후 형편이 조금 나아지자 한 달에 사십만 원씩 정기적으로 송금하기 시작했고, 최근에야 원금 팔천만 원을 모두 채웠다. 동생은 이제 법적 채무가 없다고 생각해 송금을 멈췄다.
그런데 언니의 반응은 전혀 달랐다. 상대방이 아직도 깊은 원망과 분노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전해졌고, 심지어 절연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표면적으로는 원금만 갚는 문제로 보이지만, 그 아래에는 훨씬 더 복잡한 경제 논리가 숨어 있다. 언니 입장에서 보면, 삼십 년 전의 팔천만 원은 당시 기준으로 *** 지역 아파트 한 채를 살 수 있던 거액이었다는 점인 것으로 보인다. 그 돈이 삼십 년간 자신의 자산으로 묶여 있었던 셈인 것으로 보인다. 그 사이 화폐 가치는 크게 떨어졌고, 만약 당시에 다른 투자처에 그 돈을 썼다면 훨씬 더 큰 수익을 올렸을 수도 있었다는 계산이 있다는 의미다.
또한 언니는 이자가 전혀 없다는 점에 배신감을 느낀다고 전해진다. 처음 약속했던 월 이율은 온데간데없고, 십여 년이 지난 후에야 원금을 쪼개서 받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것도 월 사십만 원씩이니, 언니 입장에서는 미안함보다 더 많은 것을 잃었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는 지적인 것으로 보인다.
반면 동생 측의 논리도 나름의 일관성이 있어 보인다. 형편이 어려웠지만, 단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매달 사십만 원씩 갚아나갔다는 점인 것으로 보인다. 이자 없이 원금만이라도 다 갚은 것 아니냐는 입장인 것으로 보인다. 법적으로는 채무가 소멸했다고 볼 여지가 있다는 논리다.
그러나 가족 간 금전 거래에는 본질적인 함정이 있다는 의견이 제시된다. 계약서도 없고, 이자율도 명확히 정하지 않고, 상환 기한도 모호한 경우가 많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바로 이 모호함 때문에 같은 사건을 두 사람이 완전히 다르게 기억하고, 다르게 셈하고, 다르게 느끼게 된다는 분석인 것으로 보인다. 동생은 '원금을 다 갚았으니 끝'이라고 생각했지만, 언니는 '삼십 년간 기다린 것에 대한 보상이 없다'고 느낀다. 이 둘 사이의 간격이 '절연'이라는 극단적 선택으로까지 번진 것으로 보인다.
현실적으로 이 상황을 풀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추가 금전 보상도, 반복된 사과도 언니의 감정을 회복시키기에는 부족하다고 느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왜냐하면 이는 더 이상 돈의 문제가 아니라, 삼십 년간 쌓인 신뢰와 존중의 문제이기 때문이라는 지적인 것으로 보인다. 동생이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단순히 빚을 갚는 것이 아니라 언니의 세월과 기다림 자체를 인정하는 방식의 관계 회복을 시도하는 것 정도일 것으로 보인다.
📌 원문 발췌
화폐 가치가 떨어진 지금에야 원금 숫자만 맞춰 갚은 태도가 괘씸하다는 입장 vs 매달 40만원씩 거르지 않고 성의를 다해 원금을 모두 갚았다는 입장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