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을 다녀온 10분 사이, 직장의 흐름은 예상 밖으로 굴러간다. 동료에게서 온 전화 하나. 자신은 자리를 비워 있었고, 전화는 받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돌아왔을 때 무엇이 기다리고 있었을까. 일의 중대한 문제가 아니었다. 팀장의 표정, 그리고 그 뒤따른 말 한마디였다.
"전화가 왔는데 왜 못 받았어? 이건 정말 이해가 안 간다."
이 물음은 단순한 질문이 아니라는 평가다. 그 속에는 마치 당겨받기라는 의무를 어긴 것처럼 느껴지는 압박감이 담겨 있다는 의견인 것으로 보인다. 화장실에 간 것도, 예측 불가능한 생리적 필요도 감안하지 않는 무조건적인 질책으로 받아들여진다. 많은 한국 직장인들이 경험하는 이 상황은 '암묵적 규범'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얼마나 강하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직장 내 '전화 당겨받기'는 명문으로 규정된 업무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십 년간 팀워크, 협력의 지표처럼 취급되어 온 관행으로 봐진다. 정해진 규칙이 아니기에 더욱 피하기 어렵다고 지적된다. 왜냐하면 그것이 '상식'으로 받아들여져 왔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모두가 그렇게 하니까, 너도 당연히 해야 한다는 식의 무언의 강압이 조직 내에서 작동한다고 할 수 있다. 명시적 지시보다 암묵적 기대가 더 강력하다는 것은, 이 문화가 얼마나 공기처럼 스며들어 있는지를 방증한다.
문제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는 점인 것으로 보인다. 화장실 같은 정당한 자리비움도 용납되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심각하다고 본다. 개인의 신체적·생리적 필요는 직장의 무조건적인 가용성 앞에서 뒷전이 되는 형국인 것으로 보인다. 팀장의 "이해 불가"라는 발언 속에는 얼마나 강한 권위적 압박 구조가 숨어 있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이것은 더 이상 배려의 문화가 아니라는 평가가 나온다. 감시의 문화에 가깝다는 지적인 것으로 보인다. 직원을 독립적인 개인이 아닌, 언제든 소환 가능한 자원으로 보는 사고방식이 반영된 것이라는 의견인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먼저 묻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된다. 왜 반드시 받아야 하는가. 이것이 우선 문제라는 것으로 보인다. 못 받은 이유를 따지기 전에, 개인의 정당한 부재도 용납하지 않는 문화 자체를 먼저 질문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팀장도 "왜 못 받았냐"고 먼저 물었지만, "왜 나는 이런 기대를 하는가"는 묻지 않았다는 점이 지적된다. 자신의 기대가 정당한지, 그것이 직원의 개인 시간과 신체의 자유를 얼마나 침해하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독자 중에는 비슷한 경험을 했거나, 여전히 그 무언의 압박 속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함께 던져보는 질문이 필요하다는 생각인 것으로 보인다. 업무 효율과 개인의 기본권 사이에서, 과연 어디까지가 정당한 요구인가 하는 물음 말인 것으로 보인다. 당겨받지 못한 전화 하나가 정말 질책의 대상이 될 만큼 중대한 일이었는가. 아니면 그저 직장 문화 속에 면역이 되어 있는 강압일 뿐인가 하는 의문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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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출처: 인스티즈 익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