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시민들이 매일 이용하는 시내버스에서 일어나는 한 가지 이상한 현상이 있다. 버스 정류장에서 내릴 준비를 한 승객들이, 동시에 뒤에서 타려는 승객들을 피해야 하는 상황이 일상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버스에서 그런 것은 아니지만, 특히 출퇴근 시간대나 혼잡한 노선에서는 이런 장면이 반복된다. 내려야 할 사람이 먼저 움직여야 하고, 타야 할 사람이 양보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내릴 사람이 타는 사람들 사이를 헤치며 나가야 하는 형태로 진행된다. 심지어 경우에 따라서는 뒷문으로 타려는 사람이 앞문으로 타려는 사람보다 훨씬 많아서, 내리는 승객이 문 가장자리로 몸을 날려 간신히 빠져나가야 하는 안타까운 장면도 목격된다.
표면적으로 보면 이것은 버스 이용객들의 예의 부족 문제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사실은 더 근본적인 시스템의 결함이다. 국내 대부분의 시내버스에 설치된 후문(뒷문) 카드 단말기는 애초부터 '하차(내리기)'만을 목적으로 설계되었다. 카드를 갖다 대면 내림 신호가 울리고, 버스가 감속한다. 이론적으로 탑승(타기) 신호는 불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카드 리더기가 하차와 탑승 신호를 모두 인식한다. 제지할 방법이 없으니, 일부 승객들이 뒷문으로도 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 명, 두 명이 그렇게 했고, 이것이 '정상적인 옵션'처럼 여겨지기 시작했다. 운전자도 제재할 수 없고, 시스템도 막지 않으니, 자연스럽게 다수가 따라 하게 된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소수의 이탈이 다수의 관행으로 굳어지는 과정'이다. 처음에는 몇 명의 급한 사람들이 뒷문으로 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제재 수단이 전혀 없으면, 인간은 간단한 심리 법칙을 따른다. '남들도 한다', '시스템에서 막지 않는다', '큰 해가 없어 보인다'는 판단이 들면, 개인의 양심에만 호소하는 것은 거의 무용지물이 된다. 이것은 개인의 도덕성 문제가 아니라, 제도적 경계선이 없을 때의 인간 행동의 당연한 결과다.
문제는 뒷문 승차가 소수로 남아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현장에서는 뒷문으로 타는 사람이 앞문으로 타는 사람보다 많거나 비슷한 수준인 경우가 빈번해졌다. 이 순간, 버스의 정차 구조는 완전히 역전된다. 내려야 할 사람과 타려는 사람이 한 공간에서 부딪히면서 정차 시간이 지수적으로 늘어난다. 한두 정거장의 지연이 아니라, 이후 모든 정류장에 도미노 효과처럼 누적된다. 운전 시간표가 밀리고, 그 버스를 기다리던 다른 정류장의 승객들까지 영향을 받는다. 이것은 더 이상 개별 승객의 불편함이 아닌, 대중교통 시스템 전체의 효율성을 훼손하는 구조적 문제가 되어 있다.
일부 지자체와 버스 운영사는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했다. 해결책은 기술적으로 간단하다. 후문 카드 단말기의 설정을 조정해서, 하차 신호는 받되 탑승 신호는 차단하면 된다. 현대의 카드 리더 기술이면 충분히 가능한 조치다. 실제로 이를 검토하고 시행한 지역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지역의 버스에서는 후문 탑승이 그대로 방치되고 있다. 일부 버스에만 적용되었거나, 기술적 오류로 다시 풀린 경우도 있다. 제도가 존재하지만 실행이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이 현상을 보면서 깨닫게 되는 것은, 대중교통의 질서는 두 가지 요소로 움직인다는 점이다. 하나는 '승객 개인의 매너와 자각'이고, 다른 하나는 '시스템의 명확한 설계'다. 만약 시스템이 개인의 도덕성에만 의존한다면, 장기적으로는 반드시 무너진다. 인간은 약하고, 제도적 금지가 명확하지 않으면 편한 쪽을 택한다. 뒷문 승차는 개인의 선택 문제가 아니라, 선택할 수 있게 방치된 시스템의 책임이다. 진정한 해결은 승객들에게 '매너 있게 행동해달라'고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그런 선택을 할 수 없도록 기술적으로 차단하는 것이다. 버스 안의 혼란을 개별 시민의 의식 부족으로 진단하기 전에, 시스템 설계자가 먼저 그 혼란을 만들지 않도록 설계해야 한다.
📌 원문 발췌
내리는 사람이 오히려 뒤로 타는 사람들을 피해서 문 가장자리 쪽으로 겨우겨우 내린다는.. 뒤쪽 단말기는 아예 탑승 처리가 안되게 했으면 좋겠어요.
원본 출처: 클리앙 모두의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