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으로 충분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들 중에 이런 사람이 있다. 부모의 경제력이 넉넉하고, 본인도 어려움 없이 자라고, 지금도 실질적인 물질적 지원을 받고 있으면서도—오히려 그 사실을 최대한 드러내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들 말이다. 겉으로는 '있는 척 없는 척'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이런 사람은 반대다. 실제로 있으면서 '없는 척'한다.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이런 선택은 더 복잡해진다. 월급 통장 관리나 내년도 적금 계획, 혹은 차를 사야 한다는 고민을 나누는 친구들 사이에서 자신은 침묵한다. 공감하고 싶지만, 부모가 차를 사준다고 하거나 결혼할 때 집을 지어준다는 말을 꺼내는 순간 친구들의 얼굴이 바뀔까봐. 경제적 여유가 없는 친구들이 대부분이기에, 말하는 것 자체가 상대방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선물하는 일처럼 느껴진다. 이렇게 입을 다물고 있으면 관계는 유지되지만, 마음속 어딘가는 항상 '거짓말'을 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
반면 연인과의 관계에서는 더 심각한 갈등이 생긴다. 결혼을 앞두고 있지만, 남친은 자신의 저축액이 적다며 결혼을 망설인다. 부모가 신혼집을 지어주고 차도 사준다는 사실을 말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만, 입을 열 수 없다. 결혼 직전에 갑자기 '사실 부모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너무 억지스러워 보일까봐. 아니면 남친이 자신의 것이 아닌 부모의 돈으로 결혼한다는 생각을 할까봐. 그렇게 중요한 결정의 순간에, 가장 가까운 사람이기만 한 이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숨기고 있는 셈이다.
이런 선택의 밑바탕에는 두 가지 심리가 얽혀 있다. 첫째는 상대적 박탈감을 주지 않으려는 배려다. 하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관계의 진정성에 대한 의심이다. 자신이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딸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 상대방과의 관계가 '진짜'일까를 확인하고 싶어진다. 친구는 나를 있는 그대로 좋아할까, 남친은 나 자신을 사랑하는 걸까, 부모의 자산 때문에 접근하는 건 아닐까. 이런 의심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숨기고, 드러내지 않는 쪽이 관계를 더 안전하게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생긴다. 부모의 경제력이 정말 '부모의 것'일까. 자신이 받은 교육, 심리적 안정감, 인생 초반의 물질적 지원이 고스란히 현재의 자신을 만들었다면, 그것을 완전히 분리해서 생각할 수 있을까. 또한 결혼을 앞두고 있다면, 부모가 제공하려는 신혼집이나 경제적 지원은 본인의 미래를 이루는 요소인데, 이를 연인에게 숨기는 것이 진정한 투명성일까. 결국 이것은 단순한 돈의 문제가 아니라, 부모의 자산과 본인의 정체성을 어디까지 분리할 것인가,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얼마나 솔직할 것인가의 문제다.
결국 '드러낼까, 숨길까'는 이분법적인 문제가 아니다. 관계마다 다른 기준이 필요하다. 친구 관계에서는 일부러 자랑할 필요는 없지만, 궁금해할 때 솔직하게 말해도 괜찮다. 그것이 진정한 친구 관계를 판단하는 시금석이 될 수 있기도 하다. 결혼을 앞두고 있다면 연인에게는 더 솔직해야 한다. 신혼생활의 경제 기반이 어디서 오는지, 부모의 지원이 얼마나 될 예정인지는 부부가 함께 설계해야 할 미래의 문제다. 숨기면서 결혼했다가 나중에 밝혀지는 것이 관계의 신뢰를 더 손상시킬 수 있다.
📌 원문 발췌
부모님 연봉이 합쳐서 6억 정도 되어 여유가 있는 편입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제가 여유 있는 집안의 딸이라는 사실을 굳이 드러내지 않는 것이 오히려 제게 더 편하고 안전하다고 생각해왔습니다.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