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에서 자주 접하는 헤드라인 중 하나가 일본인 것으로 보인다. '일본 경제 위기', '침몰하는 일본', '저성장 덫에 빠진 일본'...

언론은 숫자로 위기를 보여준다. 고령화율, GDP 성장률, 실질임금 정체, 출산율 급락. 매번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일본은 심각한 상황이라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오랜 기간 그 사회에 몸담고 있는 사람의 관점은 조금 다를 수 있다. 같은 현상을 보면서도 '위기'와 '적응된 일상' 사이에는 생각보다 깊은 간격이 있다는 뜻인 것으로 보인다. 분명 문제가 있지만, 그것이 당사자들의 눈에는 '문제'라기보다 '조건'으로 읽힐 수도 있다는 관점인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역사를 조금 거슬러 올라가면 흥미로운 원리를 발견할 수 있다. 에도 막부 시대 조세 철학에는 인상적인 기준이 있었다고 한다. 농민을 수탈할 때도 한계가 있었는데, '죽지 않을 정도로만 짜내라'는 원칙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것이 단순한 역사 일화로 끝나지 않는 이유는, 그 논리가 현대 일본의 분배 구조 속에도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는 관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당연히 시대는 완전히 다르고, 사회 구조도 새로워졌다. 하지만 '모두가 완전히 무너지지 않는 수준에서 균등하게 분배한다'는 원리의 맥락은 이어지고 있을 수 있다는 해석인 것으로 보인다. 마치 선조의 경험과 지혜가 세대를 건너 DNA처럼 체화되는 현상을 보는 듯한 느낌인 것으로 보인다.

태평양전쟁 패망을 제외하면, 일본의 국가 시스템이 근본적으로 흔들려본 경험이 거의 없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혁명의 시대를 거치지 않았고, 급격한 체제 전환도 경험하지 않았다. 대외적 위기는 있었지만, 내부 시스템 자체를 뿌리부터 바꾼 적은 드물다는 뜻인 것으로 보인다.

이런 역사적 연속성이 보수성의 토대가 된다. 변화가 오더라도 그것은 급진적이지 않다. 기존 틀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세밀한 조정만 이뤄지는 경향인 것으로 보인다. 고령화 사회라는 새로운 조건이 추가되면서, 이 보수적 성향은 더욱 강해진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는 무엇일까. 어떤 관찰자는 이렇게 본다. 일본 사회는 명시적이지 않은 '공평하게 못 살자'는 합의를 이룬 것 아닐까. 한 계층이 특별히 잘 살기를 거부하되, 한 계층이 완전히 무너지지 않도록 유지하는 방식 말인 것으로 보인다. 외부 관찰자 눈에는 이것이 '침체'로, '쇠퇴'로, '위기'로 읽힌다. 하지만 내부 당사자들에게는 이미 '정상'이고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다.

역할을 바꾸면 더 명확해진다. 한국 사회를 외부에서 바라보는 일본인도 같은 의문을 품는다. '왜 저렇게 경쟁이 심할까', '일과 삶의 균형은 없을까', '왜 저렇게 빨리 움직일까'. 우리의 가치관과 문화적 선택이 그들의 눈에는 낯설고 이해하기 어려운 것처럼, 그들의 적응 방식도 우리의 기준과 다르다. 외부에서 위기로 읽는 일상이, 당사자에겐 충분히 합리적인 합의이자 선택일 수 있다는 게 핵심인 것으로 보인다.


📌 원문 발췌

***의 영상을 보고 '자기들이 저렇게 원했구나. 3자가 함부로 판단할 문제는 아니구나' 싶습니다. 태평양전쟁 패망 빼고는 국가적 시스템이 한 번도 제대로 흔들린 적이 없다네요.

원본 출처: 클리앙 모두의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