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락 안 해도 된다"고 말했던 그날 이후로 정말이지 연락이 끊겼다. 처음엔 사흘이 지났고, 그 다음은 일주일이었다. 매일매일 휴대폰 화면을 켰다가 다시 잠궜다. 혹시 모르니까.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이상한 확신이 생겼다. 저 사람은 정말로 내 말을 받아들인 거다, 하고.
왜 그런 말을 꺼냈을까. 돌이켜보니 그건 자존심이었다. 상대가 한동안 연락을 미지근하게 받자, 먼저 거리를 두려고 했다. 그렇게라도 자신의 상처를 지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괜찮아, 너 바쁜 거 알아. 연락 안 해도 된다"고 말했다. 마치 내가 이 관계에서 초연한 사람이라고 보이기 위해.
하지만 그 말 속에는 다른 의도가 숨어 있었다. 이 말이 상대의 마음을 돌릴 거라는 기대. 적어도 "내가 저 정도로까진 당신을 생각해주고 있다"는 신호가 전달되길 바라는 마음. 혹은 더 솔직하게 말하면, 이 한 마디가 상대의 행동을 바꾸게 될 거라는 기대 말이었다.
그러나 상대는 그걸 받지 않았다. 아니, 받지 못했다는 게 맞을까. 그보다는 받지 않기로 했다고 봐야 할까. 같은 말이 두 사람 사이에서 정반대로 작동했던 것 같다. 한 쪽은 "그래도 연락해줬으면 하는" 역설적인 기대를 담아 던진 말. 다른 한 쪽은 그것을 그냥 허락으로, 혹은 상대방의 진심이라고 받아들인 것.
상대는 상대대로 자신의 마음이 이미 정해진 상태에서, 더 이상 노력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혹은 내가 처음부터 그 정도의 상대가 아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더 냉정하게 말하면, 상대는 내 말을 '편한 핑계'로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
연락이 끊기고 며칠이 지나자 허탈함이 서서히 밀려왔다. 가시처럼 아픈 감정도 없었다. 그냥 공허했다. 내가 던진 말이 나를 찌르는 기분. 그것도 가장 힘든 부분이었다. 누군가가 내게 상처를 준 게 아니라, 내가 내게 한 말이 나를 멍들게 했다.
마치 내가 자신에게 그럴 정도로 중요하지 않았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처음부터 상대에겐 그런 사람이었던 걸까. 아니면 어느 순간부터 그렇게 된 걸까.
이런 상황은 생각보다 흔하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유사한 사연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자존심으로 내뱉은 말이 부메랑처럼 돌아와 자신을 찌르는 경험 말이다. 말이란 그런 거다. 상대가 내 의도대로 받을지, 정반대로 받을지는 항상 불확실하다. 그리고 그 불확실함이 관계를 가장 약하게 만드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