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으로 향하는 건 항상 부드러운 흐름은 아니다. 특히 이 예비신부처럼 처음부터 결혼 자체에 집착하지 않았던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4년을 함께하며 자연스럽게 관계가 깊어졌고, 혹시 모르니 결혼이라는 선택지도 열어두고 있었다. 하면 하고 말면 말자. 상대방도 그 마음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서부터인가 기류가 바뀌었다.

상대방이 먼저 결혼을 꺼내게 되었다. 주도권은 그 사람이 쥐었다. "결혼하자"는 목표는 분명했고, 예비신부도 그 흐름에 동의하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준비에 돌입한 것으로 전해진다. 누군가는 계획을 세우고, 누군가는 실행한다. 보통은 그렇다. 그런데 이 경우엔 모든 계획과 실행이 한 사람에게 쏠렸다.

상담 전화 몇 군데. 그것이 상대방의 역할의 전부인 것처럼 보였다. 그 후로는 침묵이었다. 예식장을 정해야 한 것으로 전해진다. 스튜디오 촬영 날짜를 잡아야 한 것으로 전해진다. 웨딩 촬영 일정을 맞춰야 한 것으로 전해진다. 드레스를 고르고 시간을 내서 가야 한 것으로 전해진다. 웨딩링을 사야 한 것으로 전해진다. 예복을 맞춰야 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모든 것이 예비신부의 몫이 되어버렸다. 업체에 전화를 돌리는 것도, 일정을 확인하는 것도, 시간을 맞춰 다니는 것도 본인의 손가락으로 직접 해야 한 것으로 전해진다.

본인도 바쁜 상황이었다. 정말 바쁜 와중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왕 준비하는 거라면 잘해보자"는 마음으로 꼼꼼히 알아보고 있었다. 그런데 상대방으로부터 돌아오는 대답은 늘 같은 것 같았다. 바빠서 못 한다. 나중에 한다. 그 말뿐이었다.

같은 24시간을 살고 있으면서 왜 본인만 시간을 짜내고, 본인만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단순히 피로한 것이 아니었다. 더 깊은 불안감이 피어올랐다. 결혼 후는 어떨까. 가사는 누가 할까. 육아는 누가 할까. 결혼 준비 과정에서 드러나는 이 불균형이 결혼 후 일상의 패턴이 될 건 아닐까.

앞으로 남은 준비물들을 세어보는 것도 힘들어졌다. 상견례, 청첩장, 청모, 혼주 한복, 혼주 양복, 식전 영상. 리스트는 끝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새로운 항목들이 떠올랐다.

갑갑함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준비 과정이 너무 힘들어서 싸우는 예비부부들의 얘기를 흔히 듣는다. 하지만 이 부부는 싸우지 않는 것 같다. 싸울 리 없어 보인다.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니까. 차라리 싸워서 상대방의 진심을 끌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마음까지 들 정도였다.

처음엔 달랐다. "이 정도 감정이면 평생을 함께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확신이 있었다. 하지만 준비 과정에서 그 확신은 서서히 증발해갔다. 이제 본인을 움직이는 건 사랑이 아닌 것 같았다. 기대감도 아닌 것 같았다. "이미 시작했으니 마무리는 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피로감뿐이었다.

"대체 나는 왜 이 결혼을 하려고 했을까?"

그 질문에 답할 수 없게 되었다. 처음엔 선택지였던 결혼이 이제는 무거운 짐이 되어 있었다. 결혼 준비의 불균형은 더 이상 단순한 역할 분담의 문제가 아니었다. 본인이 정말로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이 결혼이 정말로 필요한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으로 변해 있었다.


📌 원문 발췌

결혼을 먼저 얘기하고 하자고 한건 저쪽인데 왜 저만 준비하는거 같은 느낌일까요? 결혼은 같이 하는건데 알아보는건 또 저만 하는거같아서.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