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오빠 스타일의 '착한 남자'만 만나다가 다른 세상을 마주한 친구의 이야기를 들었다. 겉으로는 존댓글을 지키고 물질적으로도 충실했던 그 남자. 하지만 결혼을 하고 나서부터는 모습이 달라졌다고 한다. 지금 그 친구는 평생을 후회하며 산다. 선택의 기준이 없었다. '이 정도면 괜찮겠지'라는 막연한 생각이 결혼이라는 가장 큰 결정으로 이어졌고,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 됐다는 뜻인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비슷한 또 다른 친구는 결혼 전에 많은 남자를 만났다. 그 과정에서 뭔가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고 한다. 무엇이 자신을 끌어당기는지, 무엇이 자신을 다치게 하는지, 상대의 어떤 태도가 수용 가능한지 불가능한지가 점점 명확해졌다는 것. 지금 그 친구는 착한 남자를 만났는데, 이전 친구와 다른 점이 하나 있다. 선택이 아니라 확신이라는 것으로 보인다.
두 친구의 가장 큰 차이는 뭘까. 학창시절 순수한 감정으로 누군가를 사랑해본 경험. 20대 초반에 눈만 마주쳐도 불붙는 뜨거운 감정을 느껴본 경험. 한 번은 가볍게, 한 번은 진지하게, 또 한 번은 서로 다른 가치관으로 결별했던 경험들. 이런 것들이 쌓이면서 비로소 남자를 본다는 감각이 생긴다는 것으로 보인다. 감정에 휩쓸리지 않으면서도 상대를 이해할 수 있게 되고, 상대의 진심과 거짓을 구분하는 눈이 생기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최소 6~7명은 제대로 사귀어봐야 이런 눈이 생긴다고 말한다. 물론 숫자 자체가 중요한 건 아니다. 중요한 건 다양한 유형의 남자를 경험하는 것으로 보인다. 순진하고 진심인 남자, 매력적이지만 위험한 남자, 자기중심적인 남자, 우유부단한 남자, 겉으로는 괜찮은데 나중에 문제가 드러나는 남자. 이런 스펙트럼 속에서 자신의 기준이 형성된다.
그렇다면 결혼 전까지 어떻게 만나야 할까. 오는 사람을 막지 말고, 가는 사람을 잡지 마라는 조언이 있다. 깊이 생각해보면 이것은 집착에서 벗어나는 방법이자, 동시에 현명한 선택으로 나아가는 길인 것으로 보인다. 상대를 절실하게 필요로 하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사랑할 수 있을 때, 그 관계가 정말로 건강한지 독이 되는 건 아닌지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여기서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될 부분이 있다. 바로 자신의 신체와 건강을 지키는 것. 성경험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임신이나 성병은 단순한 '일'이 아니다. 내 몸 전체의 건강, 평생의 신체 상태를 좌우할 수 있는 심각한 일인 것으로 보인다. 한두 번의 선택 실수가 평생 안고 가야 할 신체적 고통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깨달음이 있다. 아무리 다정하고 책임감 있어 보이는 남자도, 결국 내 몸이 아니기 때문에 그 고통을 완전히 공감할 수 없다는 것으로 보인다.
임신이 되면 누가 아파할까. 성병이 생기면 누가 치료를 받을까. 그 신체적 고통과 정신적 후유증, 일상의 제약, 앞으로의 삶에 미칠 영향 — 이 모든 것을 감당하는 건 당신 혼자다. 상대를 아무리 믿고 사랑했더라도 말인 것으로 보인다. 더 현실적으로 말하면, 그런 일이 생긴 후에 상대가 끝까지 곁에 있어줄 거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역사적으로, 통계적으로 많은 여성들이 이 지점에서 절망한다. 자신의 몸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상대가 떠났을 때의 배신감이 겹쳐져.
결국 다양한 남자를 만나고 경험하는 일의 진짜 목적은 뭘까. '더 좋은 남자를 고르는 능력'이 아니다. 물론 그것도 생기겠지만, 더 중요한 건 자기 몸을 스스로 아끼고 지킬 줄 아는 감각을 키우는 것으로 보인다. 아무리 많은 관계를 경험해도, 그 과정에서 자신을 잃지 않고 자신의 신체를 소중히 여길 줄 알 때, 비로소 건강한 관계를 맞이할 수 있다. 결혼이든 그 이후든, 궁극적으로 당신을 지키는 것은 당신의 선택과 당신의 기준인 것으로 보인다. 그것이 가장 확실한 자기보호 방법인 것으로 보인다.
📌 원문 발췌
최소 6~7명은 제대로 사겨봐야 남자보는눈이 생기는것 같음. 꼭 지킬건 내몸 내가 스스로 아낄줄 알고 지켜야한다는거. 아무리 다정한 남자도 어차피 자기몸이 아니니까 공감하는거에 한계가 있음.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