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3학년 때 수능 점수에 맞춰 지원한 지방국립대 토목공학과. 입학 결정 당시 부모 입장에선 손사래를 쳤다. 토목 업계는 이미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었고, 일하는 현장은 야근이 많기로 악명 높았으며, 무엇보다 지방 근무가 대부분이라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스스로의 경험으로 보나 뉴스에서 접하는 업계 전망으로 보나 '좋은 진로'라고 손 놓고 응원하기 어려웠던 선택지였다.
하지만 아들은 고집 있게 그 길을 택한 것으로 전해진다. 부모의 반대 목소리에도 흔들리지 않고.
4년의 대학 생활이 지나며, 부모의 불안은 조금씩 걷혔다. 학점은 우수했고, 아르바이트로 본인의 용돈을 직접 벌어 썼으며, 졸업식이 끝나자마자 첫 회사에 취업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입학부터 취업까지 그 모든 과정에서 한 가지 단어로 압축할 수 있었다. 성실함. 아들의 이력서는 성실함 그 자체였다.
그런데 8개월이 지났을 때 전화가 울렸다. 목소리는 진정했고, 말투는 단호한 것으로 전해진다. "회사를 그만두려고 합니다."
처음 회사를 다닌 지 반년도 채우지 못한 셈이었다. 부모의 입장에선 또 다른 걱정이 피어올랐다. 혹시 직장 적응을 못한 건 아닐까. 게으름을 부리다 일을 그만둔 건 아닐까. 하지만 아들의 설명은 달랐다. 야근이 유달리 많았고, 직속 선배와의 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이야기를 들으며 부모가 깨달은 것은, 이게 무기력한 퇴사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아들이 자신의 일과 직장 환경을 냉철하게 관찰했고, 그 자리가 더 이상 자신의 성장을 돕지 못한다고 판단해 떠나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공기업에 도전해 보겠습니다. 1년만 지켜봐 주세요."
그 말을 들었을 때 부모의 마음은 한 번 더 추락한 것으로 전해진다. 요즘 공기업 경쟁률이라는 게 얼마나 높은지 뉴스로도 자주 본다. 서류 같은 건 떨어지고, 필기 같은 건 떨어지고, 2차 면접도 떨어지고... 1년 동안 떨어지는 경험만 해 봐야 하는 건 아닐까. 속으로는 계속 걱정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아들은 공부한 것으로 전해진다. 자격증도 따고, 필기시험 점수를 올리고, 모의고사처럼 문제집도 풀었다.
그 5개월이 끝났을 때 비로소 부모의 마음이 놨다. 퇴사 후 겨우 5개월, 어떤 면에서는 명망 있는 공기업 기술직에 한 번에 합격한 것이었다. 여러 차수의 필기, 2차 면접, 3차 면접까지 있었지만, 아들은 한 번도 넋을 잃지 않고 차근차근 준비했다고 한다.
그즈음 주변에서 들려오는 말들이 많았다. 기술직은 경쟁률이 낮아서 합격하기 쉬웠을 거야. 토목 기술직은 수요가 있으니까. 그런 말들을 듣다 보면 아들의 노력이 마치 운 같은 것으로 축소되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기술직도 자격증을 준비해야 했고, 각종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야 했으며, 다단계 면접을 통과해야 한 것으로 전해진다. 쉬운 길이 아니었다는 뜻인 것으로 보인다. 저마다의 경로가 있고, 그 경로는 보인다고 쉬운 게 아니라는 점을 다시금 느꼈다.
이제 생각해 보니 패턴이 보인다. 부모가 반대했던 토목공학과 선택에서도 아들이 옳았다. 첫 직장 8개월 만의 퇴사 결정에서도 그랬다. 공기업 도전이라는 결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매번 아들은 부모의 우려와 반대를 듣고도,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선택을 했으며, 그 선택에 책임을 졌다.
부모가 할 일은 무엇이었나. 옆에서 걱정하고, 그 걱정을 때론 반대로 표현하고, 결국 아들의 선택을 지켜본 것뿐이었다. 이제 느낀다. 이게 자식 키우는 방식의 본질인 것 같다. 얼마나 학점을 잘 받았는지, 얼마나 빨리 취업했는지, 얼마나 유명한 회사에 들어갔는지가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났다는 점 말인 것으로 보인다.
📌 원문 발췌
한 8개월다니더니 잦은야근에 나이많은 사수의 의사소통 부재등으로 퇴사했어요. 결과는 퇴사 5개월만에 네임밸류 탑 정도되는 곳에 한번에 합격했어요.
원본 출처: 딴지일보 자유게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