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가 방문할 때마다 제일 먼저 향하는 곳은 주방인 것으로 보인다. 한 달에 두 번, 그 방문이 반복될 때마다 냄비와 냄비뚜껑의 위치는 자신도 모르게 움직인다.

지난번 방문에서는 글쓴이가 자주 쓰는 냄비들을 자신의 키에 맞게 위 선반에 보관하고 있었는데, 시어머니가 '자주 쓰는 건 아래에 둬야지'라고 말씀하시며 직접 정렬을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의를 제기할 틈도 없이 모든 게 옮겨져 있었다. 글쓴이가 '아니에요, 저는 키가 커서 위가 더 편해요'라고 하려던 그 찰나였다. 자신의 주방, 자신의 냄비인데 주인의 의견은 들어질 기회가 없었다.

그날 저녁, 남편에게 상황을 설명한 것으로 전해진다. "내 얘기 좀 들어줄 수 있어?" 하는 마음이었다. 응답은 예상을 벗어났다. "엄마가 살림을 몇십 년 해오셨는데 엄마 말을 들어서 손해 볼 게 뭐 있냐." 남편은 아내의 불만을 '아내가 시어머니를 비판하려 한다'고 해석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가 핵심인 것으로 보인다. 글쓴이는 편을 들어달라고 한 게 아니다.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했을 뿐인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남편의 귀에는 "엄마를 비판하지 말고 엄마 말이 맞다고 인정해"라는 뜻으로 들린 셈인 것으로 보인다. 이건 단순한 소통 착오가 아니다. 부부가 같은 상황을 해석하는 방식이 정반대라는 뜻이기도 하다. 한 사람이 위로를 원할 때, 다른 한 사람은 교정을 하려고 든다. 한 사람이 공감을 청할 때, 다른 한 사람은 충성도 판정을 한다.

주방의 동선과 효율은 사용자의 신체 조건과 생활 습관에 따라 달라진다. 키가 크면 위 선반이 편하다는 건 객관적 사실일 수 있는데, 그것마저 '살림 경력이 더 많은 사람의 말'에 밀려난다. 마치 경험 연차가 곧 정답인 것처럼. 마치 손님의 의견이 집주인의 필요보다 우선인 것처럼. 집주인조차도 그렇게 생각하도록 강요당하는 상황에 놓인다.

친구의 경우가 얼마나 다른지 생각해보니 마음이 철렁한 것으로 전해진다. 친구의 시어머니는 방문할 때 손님처럼만 앉아 계신다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반찬도 해다 주시고, 집의 배치나 상태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없으신다고. 같은 시어머니-며느리 관계인데 경험이 이렇게 다를 수 있다. 한쪽은 손님으로 대접받고, 한쪽은 평가받는다. 한쪽은 신경쓸 일 없이 편하고, 한쪽은 벌써부터 다음 방문이 무섭다.

이번 주말에 또 오신다는 연락이 들어왔다. 글쓴이는 이미 냄비를 원래 위치로 다시 올려놨지만, 마음은 더 무거워진 것 같다. 시어머니가 보시고 또 뭐라 하실 거라는 예상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혹은 그 반응을 피하기 위해 아래로 내려놓을까, 하고 고민한다. 자신의 편의를 포기하는 쪽으로 향하는 마음. 자신의 공간에서 편하고 싶다는 욕구가 이미 '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벌써부터 주말이 무겁다. 냄비 위치 때문이 아니다. 남편의 공감도, 시어머니의 이해도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는 생각. 그런 상황이 한 번이 아닌 계속 반복될 거라는 불안감까지 더해지면서, 무거움이 자리잡는 것으로 보인다.


📌 원문 발췌

편들어달란 것도 아니고 그냥 내 얘기 들어달란건데 남편은 엄마가 살림 몇십년 했는데 엄마 말 들어서 손해볼거 없다고 하네요.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