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장례식이 있었다. 당연히 슬픔이 있었다. 함께 살지 않던 부모였다 해도, 돌아가신 분의 무게는 무겁다. 하지만 그 슬픔과 동시에 또 다른 감정이 함께 차올랐다. 바로 장인이 직접 오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부의금은 제때 도착한 것으로 전해진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글쓴이도 그것이 표현된 성의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금액이 참석을 대체할 수 있을까? 당사자 입장에서는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 같다. 조문 자리라는 게 돈으로만 채워질 수 있는 건 아니라고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모두가 경험할 수 있는 그런 감정.

돈과 몸이 오는 것의 차이를 명확히 느낄 수 있는 순간들이 있다. 특히 누군가가 세상을 떠나는 경조사 자리에서는 더욱 그렇다.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자신의 시간을 내어 직접 그 자리에 나타나는 결정과, 통장에서 금액만 입금하는 결정은 전혀 다른 무게를 가진다. 한쪽은 조용히 "당신들과 당신 가족이 나에게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담아내고, 다른 한쪽은 어떤 방식으로든 그 자리를 외면한다는 신호로 읽힐 수밖에 없다는 반응이다. 겉으로 같은 '성의'라고 불리지만, 받는 쪽이 감지하는 온도는 확연히 다르다.

글쓴이는 처가 쪽 경조사에 단 한 번도 참석하지 않은 적이 없다고 밝혔다. 친정 쪽 부모님 명절, 친정 가족의 경조사, 처갓집 방문이 필요한 모든 자리에 몸을 실어 냈다는 뜻인 것으로 보인다. 성의를 보이는 방식 중에서 가장 직접적이고 명확한 방식으로. 시간이 있든 없든, 바쁘든 아니든, 그 자리에는 늘 있었다. 상호성이라는 관계의 기본을 자신이 먼저 지켜 온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역할이 바뀐 순간, 상대의 움직임도 달라졌다. 그것이 글쓴이 마음에 남은 것 같다. "아, 그렇군. 우리 가족의 경조사는 상대방에게 그 정도의 우선순위인가 보네"라는 생각이 들었을 테다. 나는 당신을 그 정도로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당신은 우리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건가 싶은 마음이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이혼할 정도의 갈등까지는 아니라고 글쓴이는 썼다. 남편과 장인과의 관계가 극도로 나빠진 건 아니라는 뜻인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사자가 "평생 갈 서운함"이라고 표현한 것을 보면, 이건 시간이 약이 되는 종류의 감정이 아닐 것 같다. 상호성을 기대했던 관계 속에서, 그 기대가 깨지는 순간의 감정이 얼마나 오래 머물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사연인 것으로 보인다. 경조사 참석이라는 게 단순한 예절이나 관례가 아니라, 가족 관계에서 신뢰와 우선순위를 가시적으로 드러내는 기준점이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 원문 발췌

부의금은 보내셨습니다. 근데 저는 처가 경조사에 단 한 번도 빠진 적이 없어요. 이혼할 일은 아니라는 거 압니다 그래도 이 서운함은 평생 갈 것 같네요.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