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생활비를 언니와 반반으로 매달 지원하던 와중, 언니가 갑자기 연락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번 달부터 나는 이십만 원만 낼게. 넌 나머지를 내.'라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동안 나누기로 했던 약속과는 전혀 다른 통보였다.
이유를 물었다. 언니는 이렇게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넌 맞벌이잖아. 나는 아이가 둘이고.' 글쓴이가 항의한 것으로 전해진다. 우리 가정은 둘이 벌어도 언니네 형부 한 사람 월급이 안 된다고. 소득이 높다고 해서 가처분 소득도 높은 건 아니라고 설명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언니는 이를 무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럼 넌 애 낳기 전에 효도 좀 해. 나중엔 너도 못 해.'
협의가 아니라 명령에 가까웠다. 게다가 시간까지 정한 것으로 전해진다. '애를 낳기 전'이라는 시점을 명시한 것으로 보인다. 글쓴이의 인생 선택을 조건 삼아 의무를 부과하고, 언제까지만 이 부담을 져야 한다는 기한까지 붙인 셈인 것으로 보인다.
부모님께 상황을 설명했을 땐 어떤 반응이 나왔을까. 엄마는 '언니가 요즘 힘들대. 넌 좀 이해해라'라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언니의 어려움을 이해하라는 말은 곧 글쓴이의 어려움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뜻인 것으로 보인다. 중재라기보다 한쪽 편을 드는 것처럼 느껴진다. 늘 같은 패턴이라는 생각이 든다. 언니가 힘들면 글쓴이가 이해하고, 글쓴이가 힘들면 그냥 참는다. 그렇게 자동정렬되는 구조 속에서, 이번 일은 억울함의 정점에 도달한 것으로 전해진다.
남편도 눈치챘다. 처가 일이라 말은 아끼지만, 표정이 이미 모든 것을 말해준다. 글쓴이의 답답함과 억울함이 고스란히 남편 얼굴에 묻어난다.
가장 힘든 건 다른 곳에 있다. 글쓴이도 이 상황이 불공정하다고 느낀다. 이 조건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 그런데 부모님이 중간에서 힘들어할까봐 끝까지 싸우지 못한다. 자신의 정당한 항의마저 압축하고 삼킨다. 억울함 위에 무력감까지 겹친다.
'맞벌이=능력 있음=더 많은 부담'이라는 공식이 과연 자명한가. 맞벌이라고 해서 가처분 소득이 많은 건 아니다. 집값, 학비, 생활비가 모두 다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또 '애 낳기 전에 효도해'라는 말은 글쓴이의 인생 선택을 기준으로 의무를 강요한다. 협의의 여지가 없다. 이건 합의가 아니라 강요와 다름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글쓴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첫째,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맞벌이니까' '애 없으니까' 같은 주관적 판단으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한다. 둘째, 재협의 조건을 명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경제 상황이 바뀌면 언제든 다시 나눈다는 조건을 정하는 것. 일방적 통보가 아니라 주기적인 점검과 조율이 필요하다는 뜻을 전달하는 것으로 보인다. 셋째, 부모님과의 대화다. 자녀 간 갈등에서 한쪽 편이 아닌 중재자가 되어달라고 부탁하는 것. 공정한 분담의 기준이 무엇인지 함께 생각해달라는 것으로 보인다.
부모님 생활비 지원은 효도다. 하지만 효도가 일방적 희생을 의미해서는 안 된다는 반응인 것으로 보인다. 글쓴이의 정당한 목소리가 지워지면, 그것은 더 이상 분담이 아니라 다른 형태의 착취처럼 느껴진다는 지적도 있다.
📌 원문 발췌
나 이번 달부터 이십만 원만 낼게 니가 나머지 내. 너는 맞벌이잖아 나는 애가 둘이고. 그럼 너 애 낳기 전에 효도 좀 해 나중엔 너도 못 해.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