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남매 중에서도 '특별함'이 가장 없었던 셋째의 30대 고백인 것으로 보인다. 형은 똑똑했고, 누나는 애교가 자연스러웠고, 동생은 약한 몸을 돌봐야 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렇게 각자 부모의 관심을 받을 명목이 있었는데, 글쓴이만 눈에 띄는 것이 없었다.

"성적이 올라도 형에게 밀린다. 애교를 부려도 누나에게 밀린다. 아파도 동생에게 밀린다." 원문의 이 한마디가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다. 부모에게서 시선을 받기 위해서는 뭔가 주목할 만한 특성이 필요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것이 이 가정의 구조적 소외였다. 재산이 많은 부모였지만, 4명의 자녀에게 무한정 관심을 나눌 수는 없었고, 눈에 띄지 않는 셋째는 "알아서 자라겠지" 취급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청소년기는 이 소외감을 부모와의 충돌로 표현한 것으로 전해진다. 성격이 내향적으로 굳어졌고, 대학 졸업 직전 집을 나갔다. 독립이라고 부르기보다, 관심 회피라고 할 수도 있는 선택이었다. 한 지인이 날카롭게 지적한 말이 있다. "그 독립도 사실 부모에게 주목받으려는 신호 아닌가"라는 것이었다. 글쓴이도 이 말에 어느 정도 동의하게 된다.

현재 30대 초반. 형은 결혼했고, 누나는 결혼을 앞두고 있으며, 동생은 해외 유학을 가 있다. 부모는 셋에게 재정적 지원을 충분히 해주고 있고, 가족이 함께하는 여행도 자주 다니는 것 같다. 그 풍경을 멀리서 바라보게 되면서 뭔가가 활성화되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부모님은 나 없이도 잘 지낸다"는 확신이 있었다. 다시 연락해보거나 집에 가는 것도 고민했지만, 부모는 "4명 중 1명이 없어도 상관없다"는 식의 반응이었다. 독립한 후로도 한 번의 사과나 이해를 듣지 못했고, "저 애는 알아서 잘 살 거다"라는 한마디로 끝이었다.

지난 몇 년간은 그 관계를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 그 의절이 갑자기 아프다. 분노가 올라온다. 자신도 모르는 감정들이 계속 터져 나온다. 그런데 이게 정말 후회일까?

에디터의 관점에서 보면, 이는 후회가 아니라 오랫동안 억눌린 '인정 욕구'의 재활성화로 보인다. 형제들의 결혼식, 함께하는 가족 여행, 부모의 안정적 지원—이런 '정상적인 가족 시간'이 마치 자신만 제외된 것처럼 느껴질 때, 어릴 적부터 채워지지 않았던 감정이 물밀듯이 올라온다.

부모에게 돌아갈 의향이 있는가. 아니면 이 감정을 말하지 않고 계속 거리를 둘 것인가. 그 결정 전에 자신에게 한 번 물어봐야 할 질문이 있다. 나는 정말 부모에게 용서받거나 이해받고 싶은 건가? 아니면 이 모든 시간 동안 무시당한 '나 자신'을 누군가는 인정해주길 바라는 건가? 답이 후자라면, 그것은 부모가 아닌 다른 곳—혹은 자기 자신에게서 찾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 원문 발췌

자식은 있는그대로 온전히 사랑해주는게 맞는데 저희집은 그게 아니었어요. 부모의관심을 끌만한 거리가 있어야 돌아봐주었고, 독립이후에도 부모님한테 사과한마디 못들어봤고 걔는 알아서 잘살거라고 하셨답니다.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