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동서가 아들을 낳았을 때 시어머니가 조리원비를 모두 내주셨다. ***의 고급 시설이었고 400만 원을 훨씬 넘는 비용이었다는 게 나중에 알려졌다. 그때 나는 진심으로 축하한 것으로 전해진다. 시어머니가 그렇게 잘해주신다는 게 좋았고, 동서도 운이 좋다고 생각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다 내 차례가 되면서 모든 게 달라졌다.

남편과 나는 집 근처 조리원을 알아봤다. 2주에 280만 원짜리였다. 비용이 부담스럽긴 했지만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범위였다. 점심 자리에서 남편이 시어머니께 조리원 계획을 말씀드렸다. 그 순간 시어머니는 숟가락을 내려놓으셨다.

"요즘 애들은 조리원을 안 가면 큰일이 난다고 생각하나? 나는 너희 아빠 낳고 사흘 만에 밭에 나갔다."

동서에겐 이런 말씀 한마디도 하지 않으셨다는 게 떠올랐다. 핵심은 돈이 아니라 이 온도의 차이였다. 같은 며느리인데 어떻게 이렇게 다를 수가 있나.

그 뒤로 핑계가 이어졌다. 하나가 무너지면 또 다른 이유가 나타났다.

남편이 "형수님 때도 해주셨잖아"라고 물었다. 시어머니는 "그건 친정이 멀어서 그렇게 한 거지, 너희는 친정이 가깝잖아"라고 하셨다. 나에게 친정엄마한테 산후조리를 부탁하라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친정엄마는 올해 무릎 수술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시어머니도 병문안을 오셨으니 그 상황을 모를 리 없다. 그런데 모른 척한 것으로 전해진다.

"아, 산후도우미는 정부에서 지원해주는 게 있지 않나. 그것 쓰면 되잖아."

이 말을 듣는 순간 정말 기가 막혔다. 나중에 동서한테 직접 들은 얘기인데, 동서는 조리원만 받은 게 아니었다. 산후도우미까지 쓰라고 따로 100만 원을 챙겨주신 거였다. 같은 시어머니인데, 같은 인생 단계인데, 같은 집에 시집온 며느리인데.

돈을 달라는 게 아니었다. 실제로 우리는 자신의 돈으로 조리 비용을 감당할 계획이었다. 문제는 금액이 아니라 다른 곳에 있었다. 같은 상황에 다른 기준을 적용한다는 것, 그리고 그 차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계속 이유를 바꾼다는 게 가장 힘들었다.

차에서 남편한테 물었다. "왜 나한테만 이러세요?"

"엄마가 요즘 돈이 좀 없으셔서 그런 거 같은데."

지난달에 시아버지 칠순 기념으로 유럽을 다녀오셨다. 두 분이 편히 다녀오신 게 자랑스러웠고 좋았다. 하지만 그 직후에 나한테 이 말씀을 하셨다는 게 이해가 안 갔다. 돈이 진짜 없는 건 아닌 것처럼 보였다.

밤이 깊은 어느 날, 냉장고에 붙인 태아 사진을 보면서 미안한 마음이 밀려왔다. 우리 딸이 받을 대우가 미리부터 걱정되는 마음. 동서는 아들을 낳았고 나는 딸을 낳으려고 한다. 혹시 그래서 다른 걸까. 그렇게까지 생각하게 된 게 정말 슬펐다. 그리고 그런 걱정을 하고 있는 자신이 너무 비참한 것으로 전해진다.

남편에게 이 글을 보여줬다. 어머니께 한 번 말해보겠다고 했지만 기대는 안 한다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미 상황이 깊어진 것 같았다. 같은 집에서 다르게 취급받는다는 느낌. 그게 가장 서러웠다.


📌 원문 발췌

동서는 조리원에 산후도우미까지 쓰라고 따로 백 주셨다는 거 저 다 알아요. 동서가 저한테 직접 얘기했거든요.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