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가 된 지 얼마 안 되는 누리꾼이 온라인 익명 커뮤니티에 올린 글인 것으로 보인다. 20대에 결혼한 이후 시댁과의 관계에서 만들어진 감정들이, 지금도 여전히 마음에 앙금처럼 남아 있다고 한다.
첫 상처는 신행 단계에서부터였다. 결혼 직전 친정어머니가 중병으로 쓰러졌고, 작성자는 병수발을 위해 회사에 단축근로까지 신청한 것으로 전해진다. 시아버지가 전화로 안부를 물었을 때, 작성자는 가족들끼리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병문안은 필요 없다고 정중하게 말씀드렸다. 돌아온 응답은 "그럼 내가 거길 왜 가?"였다. 그 한 마디가 얼마나 큰 상처가 되었을지는 글 속 감정으로도 충분히 읽힌다.
친정어머니 장례식에서 시댁이 처음 규칙을 세웠다. 3일간 자리를 지킨 것은 감사했지만, 조의금은 따로 없었다. 대신 시댁의 설명은 명확했다: 사돈끼리는 조의금을 주고받지 않으며, 대신 3일 내내 간식을 챙긴 것이 그것을 대신한다는 내용이었다. 작성자는 당시 이를 시댁의 관례로 받아들였고, 별다른 의문 없이 넘어갔다. 결국 시댁의 이 기준이 마음에 자리 잡게 된다.
몇 해 뒤, 상황이 반전된다. 시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작성자 부부는 병원을 오가고 집 청소도 도와드렸다. 장례식 때는 일손을 거들고 밤을 새며 참석한 사람들을 위해 영양제와 간식을 챙겼다. 그리고 중요한 부분 — 조의금은 따로 드리지 않았다. 시댁이 처음 정했던 방식을 그대로 따른 것으로 보인다. 친정아버지가 간식비 명목으로 50만원을 주셨을 때도, 작성자는 그 돈으로 필요한 것들을 구매하고 그 금액만 받았다.
며칠 뒤 시할머니 댁을 방문했을 때 예상 밖의 질문을 받는다. "조의금은 왜 안 줬냐"는 것이었다. 작성자가 "사돈끼리는 안 하는 거라고 말씀하셨잖아요"라고 대답하자, 시댁은 "깜박한 거 아니냐"며 펄쩍 뛰었다고 한다. 작성자가 자신의 어머니 장례식을 언급하며 항변하자, 시댁은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그때는 고인이 사돈이고 상주가 아니었지만, 시할머니 장례식은 상주가 사돈이므로 상황이 다르다는 것이었다. 작성자가 친정아버지도 상주였음을 말해도 시댁의 입장은 달라지지 않았다.
규칙을 만든 쪽과 따른 쪽 사이의 온도차가 여기서 극명해진다. "이런 것도 배우지 못하고 시집 왔냐"는 핀잔이 따라왔다. 이때 남편이 "나도 몰랐는데 왜 아내한테만 뭐라 하냐"고 항의했지만, 시댁의 답은 "됐다"였다. 처음 기준을 정한 쪽이 필요하면 그것을 바꾸고, 그 기준을 따른 쪽에 책임을 묻는 이 장면은 고부 갈등의 한 단면을 잘 보여준다.
서운함은 시간이 지나도 쉽게 가시지 않는다. 작성자는 "한두 해 전 친구의 경험"을 덧붙였다. 친구의 친정부모님이 위독하자, 친구의 시댁은 시부모님이 직접 마지막 인사를 가셨고, 장례식 때 조의금도 넉넉했다고 한다. 같은 상황 속에서 받은 태도의 차이를 목격하며, 작성자의 서운함은 더 깊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이 감정은 앞으로도 못 잊을 것 같다"는 마지막 문장에는, 한 번 형성된 감정의 무게를 짐작할 수 있다.
📌 원문 발췌
그건 고인이 사돈이고 너네가 상주 아니냐고 시할머님은 상주가 사돈인데 경우가 다르다고 하시더라구요.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