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관적 조건만 보면 충분히 행운한 상황인 것으로 보인다. 좋은 학교를 다니고 있는 남편, 괜찮은 외모, 어떤 일이 있어도 배려해주는 성품—그리고 경제 부분은 전부 시댁에서 챙기고 있다. 살 집도 남편 부모가 제공했고, 현재 자신과 가족이 겪는 금전적 어려움은 그들이 해결해준 상태다. 객관적으로 보면 이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조건인지는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20살 임산부는 매일 울고 있다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조건의 좋음과 감정의 불행함이 만드는 심각한 괴리—바로 여기가 문제의 핵심인 것으로 보인다.

혼인신고는 했지만 큰 결혼식은 올리지 않은 채, 남편과 둘이서 작은 아파트 생활을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임신 26주 차다. 남편이 학교에 갔다 조금이라도 늦게 돌아오면 화가 난다고 한다. 자신은 아파트 안에 있는데 남편은 밖에서 자유를 누리는 것처럼 느껴진다. 자신의 신체는 임신으로 무거워졌고, 나갈 수도 없고, 무엇을 하든 자유롭지 못하다. 그런 상황에서 남편이 늦으면, 두 사람 간의 자유의 정도 차이가 극명하게 느껴진다는 뜻인 것으로 보인다.

더 깊숙하게는 날카로운 원망이 있다고 전해진다. 연애 중일 때 남편이 피임을 거부한 것으로 전해진다. "자신이 조절을 잘한다"며 우기다가, 결국 조절에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가 현재의 상황인 것으로 보인다. 행복했던 연애의 순간들이 예상 밖의 임신으로 끝났다는 느낌이 든다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자신의 선택이 아닌 상대의 실패로 인해 발생한 임신—이것이 원망을 낳고, 그 원망은 현재의 모든 감정 상태에 밑줄을 긋고 있는 것 같다.

또래 친구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철렁한다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들은 너무 자유로워 보인다. 또 다른 20살처럼 살고 싶기도 하다. 대학생 친구들처럼 자신도 그런 시기를 누리고 싶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매일 울고, 불안한 감정도 있다. 심지어 차라리 아기가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 정도라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답답함, 외로움도 함께한다. 연애할 때 남편과 나누던 애정의 감정도 사라져 버렸다고 느껴진다.

여기서 흥미로우면서도 슬픈 지점이 있다. 주변 사람들의 반응인 것으로 보인다. 친구들이나 언니들에게 현재의 감정이 힘들다고 말할 때마다 돌아오는 대답은 정해져 있다는 것으로 보인다. "네 상황이 얼마나 좋은데 뭐가 힘들어?" "돈 걱정 없고, 시댁도 좋으니까 그게 무슨 불행이냐"는 식의 반응이라고 한다. 외부에서 보기에 좋은 조건이니까, 당사자도 행복해야 한다는 암묵적 전제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감정은 조건을 따라가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말들은 현재의 감정을 더 깊게 고립시킨다는 지적인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우울함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게 된다. 조건이 좋으니까 감정도 좋아야 한다는 논리는, 실제 감정을 느끼고 있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죄책감을 준다. "내가 부족한 걸까?" "나는 왜 감사하지 못하는 걸까?" 이런 자책이 더해지면서 감정은 더 깊어진다.

임신우울증일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임신 중기(대략 20주~28주)는 호르몬 변화가 급격하게 일어나는 시기다. 동시에 신체의 제약이 눈에 띄게 심해지고, 하루하루 자신의 삶이 '임산부'라는 역할로 재정의되는 시점이기도 하다. 이 세 가지가 동시에 겹치면, 감정의 불안정이나 우울함이 나타나는 것은 의학적으로도 알려진 현상인 것으로 보인다. 호르몬만의 문제가 아니라, 신체 변화와 사회적 역할 변화가 심리에 미치는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는 점인 것으로 보인다.

거기에 생애주기의 격차라는 구조적 문제가 더해진다. 또래는 대학생으로 살고, 연애를 하고, 자유로운 선택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 글쓴이는 이미 부부이고, 이제 곧 엄마가 될 사람인 것으로 보인다. 20살에 임신·출산·육아로 접어드는 것은 또래와의 삶 자체가 완전히 달라짐을 의미한다. 그 격차를 매일 목격하면서 사는 것은 소외감과 박탈감을 계속 키운다. 좋은 남편과 시댁의 배려는 이 구조적 고립을 지워주지 못한다.

누군가 이 상황을 전문적으로 평가해준다면, 아마도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조건과 감정은 다른 영역인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감정을 인정받고 말할 수 있는 공간이 있을 때만 사람은 다시 일어날 수 있다." 현재 이 글쓴이에게 필요한 것은 조건의 개선이 아닐 수도 있다. 지금의 불안함과 우울함을 타당하다고 인정해줄 누군가, 그리고 그것을 말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해 보인다.


📌 원문 발췌

매일 울고 불고 차라리 애가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고 매일 답답한 느낌도 들고 외롭고 제친구들보면 너무 행복하고 자유로워보이는데... 다른 20살답게 살고 싶기도 하는데 그러지도 못해서 너무힘들어요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