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준 준비로 몸과 마음이 경직되어 있던 상태가 계속됐다. 답답함이 마음에 고여 있었고, 그것을 풀어낼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퇴근 후 클럽을 찾기 시작한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다. 처음엔 가끔 정도의 빈도였는데, 개인사(이별)까지 겹쳐버리면서 방문 횟수가 점차 늘어났다. 한 주간 업무 속에서 쌓인 스트레스가 그곳에서는 풀리는 것 같았고, 아주 잠시나마 해방감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지금은 더 이상 그런 여유를 찾기 어렵다. 형편도 여의치 않고, 무엇보다 그럴 정신적 여유 자체가 남아있지 않다.

문제는 어느 날부터 회사 내에서 나를 ***과 ***에서 봤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것을 우연히 알게 됐다. 동료의 입에서 무심코 튀어나온 말 한 마디로. 그 순간 느낀 감정은 복잡했다. 회사 사람들이 이미 나에 대해 어떤 이미지를 만들어두고 있었다는 사실도 충격이었지만, 더 당황스러웠던 것은 그 이미지가 형성되는 과정에 나 자신이 전혀 개입하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소문은 이미 어느 정도 형성되어 있었고, 나는 그것을 사후에 전해 들은 것뿐이었다. 마치 내 모르는 곳에서 나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지고 있었던 셈이었다.

가장 황당했던 부분은 따로 있었다. 나를 봤다고 주장하는 그들과 달리, 정작 나는 클럽에서 회사 동료를 단 한 명도 마주친 적이 없다. 그들이 나를 목격했을 가능성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을 본 적이 없다. 이 비대칭성—일방향적인 감시 같은 상황이 가장 불편했다. 누군가 나를 일방적으로 관찰하고, 그것을 이야깃거리로 회사 내에 유통시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상처가 더해진 순간은 그 소문을 내게 직접 건넨 사람이 누구였는가를 알았을 때였다. 회사 사람들 중 누군가였고, 더 정확히는 같은 부서 동료였다. 그는 조롱기가 섞인 목소리와 톤으로 그 이야기를 꺼냈다. 나눔이라기보다는 비난에 가까웠다. 내가 왜 그곳을 찾아갔는지, 취준이라는 상황 속에서 얼마나 무거운 답답함을 느꼈는지, 개인적 어려움이 있었는지—그 모든 맥락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사실만 전달되고, 거기에 평가와 판단이 덧붙여졌다.

여기서 중요한 생각이 필요하다. 직장인의 퇴근 후 시간, 개인적인 여가를 어떻게 쓰는지는 본래 직장과는 분리되는 순전히 사적인 영역이어야 한다. 그것이 마땅한 경계다. 하지만 그 경계는 생각보다 훨씬 쉽게, 너무나 쉽게 허물어진다. 동료와 우연히 같은 공간에 마주치는 순간, 당신의 사생활은 회사 내의 정보로 변환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정보는 원래의 사실을 넘어 평가와 판단으로 가공되어 전달된다. 당사자의 의도와 배경, 맥락은 점점 빠져나간다.

지금 나는 침묵을 유지하고 있다. 못 본 척, 못 들은 척. 때론 그것이 직장 내에서 가장 현명하고 안전한 처신이라고 스스로 다독인다. 하지만 침묵이 과연 무언가를 해결하는가에 대해선 여전히 확신이 서지 않는다. 일을 계속해야 하고, 같은 부서 사람들과 마주봐야 하고, 이 어색한 감정과 불편함을 안고 일상을 유지해야 한다. 언제쯤 이 소문이 잊혀질지, 얼마나 오래 이 어색함이 지속될지 알 수 없다는 것. 그리고 그동안 내가 어떤 시선으로 바뀌어 있을지 예측할 수 없다는 것. 그것이 가장 버거운 부분이다.


📌 원문 발췌

근데 회사에서 나를 ***, ***에서 봤다면서 소문이 났어. 정작 나는 한번도 클럽에서 우리회사사람들을 못봤는데.

원본 출처: 인스티즈 익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