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익명 게시판 글쓴이의 경험담인 것으로 보인다. 부모의 폭력적 갈등 속에서 자란 것이 서른넷에 결혼한 후에도 부메랑처럼 돌아온 이야기다.

아버지는 술이 들어가면 물건을 집어던졌다. 어머니는 그 상황 모두를 자신에게 하소연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 집에서 자란 아이는 일찍부터 다짐한 것으로 전해진다. "나는 저 사람들처럼 살지 않겠다." 결혼은 절대 하지 않겠다고 생각한 것으로 전해진다. 결혼 자체가 공포였다. 그 공포는 단순한 불안이 아니라, 마치 몸 속에 각인된 경고음처럼 작동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렇게 관계를 거부하다가 서른넷에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그로부터 7년이 흘렀다. 함께 지낸 이 기간 동안 많은 것들을 발견한 것으로 전해진다. 원가족에서 반복된 갈등 패턴은 단순한 '두려움'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것은 당사자의 몸과 뇌에 조건반사를 남겼다. 정상적인 부부 싸움과 진정한 위협을 구분하기 어렵게 만드는 신경계의 기억. 마치 외상 후 스트레스 반응처럼.

부부가 싸울 때마다 그 조건반사가 발동된다. 남편의 목소리가 조금 올라가면, 자신도 모르게 온몸이 경직된다. 숨이 차오르고, 근육이 움츠러든다. 하지만 남편은 단지 화가 난 것뿐인 것으로 보인다. 싸움은 싸움이지, 위협이 아니다. 그런데 이 신체는 그것을 구분하지 못한다. 처음으로 그 감각을 남편에게 솔직하게 말했을 때가 분기점이었다. "목소리 커지면 나는 정말 무서워진다." 그 이후로 남편은 싸울 때도 의식적으로 목소리를 낮춘다. 상대의 상처를 알고, 그것을 바탕으로 태도를 바꾼다는 것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알게 되었다.

명절마다 시댁을 방문하는데, 처음 몇 번은 그곳의 분위기가 이상한 것으로 전해진다. 가족들이 자연스럽게 웃고 떠드는데, 그 평온함이 오히려 어색한 것으로 전해진다. 혹시 이게 다 연기는 아닐까 싶었다. 결핍 속에서 자란 사람이 정상적인 가정 풍경을 보면, 역설적으로 그 '정상'을 의심하게 된다. 어쩌다 보니 화목함이 낯설고, 아무것도 아닌 대화가 특별해 보이고, 평온함이 오히려 불안하게 느껴진다. 시간이 지나서야 그게 진짜라는 걸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제 자신도 엄마가 되었다. 아이에게 화낼 일이 생기면, 그 순간 자신의 엄마 목소리가 자신의 입에서 나온다. 소름이 돋는다. 대물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실시간으로 감지하는 기분인 것으로 보인다. 매번 의식적으로 멈추려고 한다. 깊게 숨을 쉬고, 아이에게 다시 말해주고, 자신의 엄마처럼은 되지 않으려고 애쓴다. 하지만 한 번도 완벽하지는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게 현실인 것으로 보인다.

원가족이 콩가루라는 이유만으로 결혼을 해선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 글쓴이의 경험담은 조금 다른 메시지를 담고 있다. 중요한 건 그 과거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대하느냐는 쪽에 있다는 뜻인 것으로 보인다. 당신의 상처가 정확히 뭔지 아는 것. 그리고 그걸 상대방에게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말하는 것. 이것이 가장 잘한 일이었다고 회고한다. 지금도 어머니와 아버지는 따로 살고 있다. 자신은 그 집 대신 현재의 집에서 살고 있다. 새로운 가족의 형태를 만들었다는 뜻인 것으로 보인다.

결혼을 앞두고 트라우마로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떨까. 침묵과 숨김보다는 대화와 공개가 길을 열어주는 경험담으로 읽힌다. 상처의 정체를 아는 것, 그리고 그것을 말할 용기가 관계의 질을 바꾸는 첫 걸음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 원문 발췌

싸울 때 목소리 커지면 저도 모르게 몸이 굳어요. 남편한테 처음으로 이 얘기 했을 때 남편이 그 뒤로 싸울 때 목소리를 낮춰줘요. 그래도 확실한 건 콩가루 집안이라고 결혼 못 하는 거 아니에요.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