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죽으면 애들이 유령이 돼요."

그 한 문장은 절망을 담으면서 현실을 정확히 지적한다. 이주가정 아이들이 맞닥뜨리는 현실을 단 일곱 단어로 압축한 것이기도 하다.

한 이주 여성의 호소가 알려졌다. 아이들의 아버지는 불법체류 상태였다. 당국에 적발되어 본국으로 추방되었고, 그 이후로는 연락이 완전히 끊겼다. 양육비? 경제적 지원? 그런 것들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혼자 아이들을 키워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 그 어머니 자신도 건강을 잃었다. 시간이 부족하다는 진단까지 받은 상태다.

이 상황에서 그가 두려워하는 것은 자신의 죽음만이 아니다. 자신이 떠난 후 남겨질 아이들이 어떤 상태가 될지에 대한 것으로 보인다. "유령"이라는 표현이 나온 이유가 여기 있다.

한국에서 태어나거나 자란 이주가정 자녀들은 법적으로 독립적인 신분을 갖기 어렵다. 특히 부모의 체류 자격이 불안정하거나 부모 중 한 명이 더 이상 책임을 질 수 없는 상황이 되면 더욱 그렇다.

아이의 주민등록이나 외국인등록 같은 행정 기록들은 부모의 신분 정보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부모가 추방되거나 사망하거나 연락이 완전히 두절되면, 남은 아이는 어느 체계에도 안정적으로 속하지 못하게 된다. 공식 기록 위에는 있지만 실제로 누군가가 책임지지 않는 상태. 마치 기록은 있는데 보호받는 사람이 없다는 의미에서 "유령"이 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여성의 경우, 한쪽 부모(아버지)가 이미 시스템에서 사라졌다. 나머지 한 명인 어머니가 아이들의 유일한 법적·경제적 버팀목인 상황인 것으로 보인다. 만약 어머니마저 더 이상 그 역할을 할 수 없게 되면, 아이들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법적 공백에 빠진다.

학교 입학, 의료 기록, 각종 지원 신청—모든 것이 불가능해지거나 극도로 복잡해진다. 아이가 응급 상황에 처했을 때 보호자가 없다. 교육을 받을 권리, 의료를 받을 권리, 사회적 지원을 받을 권리. 이 모든 것이 부모의 신분에 달려 있다.

이것은 구조 차원의 문제를 드러낸다. 이주가정 자녀의 신분을 부모에게만 종속시키는 방식이 과연 안전한가. 특히 한국에서 나고 자란 아이인 경우는 더욱 그렇다.

아이는 한국 학교에 다니고, 한국 친구들과 지낸다. 한국 사회의 일부로서 자라온 아이인데도, 그의 법적 지위는 부모의 신분 변화에 따라 순식간에 흔들린다. 이것이 합리적인 제도인가 하는 의문이 자연스럽다.

그 어머니의 호소가 우리에게 묻는 것은 결국 이것으로 보인다. 아이들의 미래를 누가 보장할 것인가. 제도인가, 아니면 사회 차원의 다른 방안이 있어야 하는가. 한 가족의 비극을 개인의 불운으로만 봐야 할까, 아니면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로 봐야 할까.


📌 원문 발췌

"저 죽으면 애들이 유령이 돼요." 불법체류자였던 아빠는 본국으로 추방된 뒤 연락이 끊겼고, 양육비나 경제적 지원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원본 출처: 더쿠 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