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보호사로 일하다 보니 알게 되는 일이 있다. 센터에서 어르신들을 돌볼 때는 노화와 질병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데, 집에 들어서는 순간 그 관대함이 사라진다. 같은 나이 또래인 부모의 행동과 말투가 센터 어르신들보다 더 이해가 안 간다. 전문가로서는 이해할 수 있지만, 가족으로서는 화가 난다. 늦은 나이에 결혼도 못했고, 나이 든 부모와 함께 산다는 현실이 얼마나 버거운지, 그 모순이 매일 반복된다.

새벽녘 아버지가 깨웠다. 어머니가 평소와 다르다고. 서둘러 내려가니 어머니가 심장을 움켜잡고 누워 있었다. 반쯤 깬 머릿속에서 구급차를 부를지, 직접 운전할지를 판단했다. 병원이 더 빠를 것 같았다. 응급실 도착, 당일 입원, 저녁 스텐트 시술. 의사로부터 들은 얘기는 예상보다 심각했다. 심장으로 가는 혈관 3곳이 완전히 폐색되어 있었고, 다른 곳들도 위험 수준이었다. "왜 이 정도가 되도록 병원을 안 오셨습니까." 의사의 질문에 눈물이 흘렀다. 어머니가 얼마나 오랫동안 그 통증을 혼자 견뎌왔는지 생각하니 말이 나오지 않았다.

시술은 성공적이었다. 10일 후 어머니는 집으로 돌아왔다. 예정되었던 갑상선암 수술은 1년 뒤로 미루어졌다. 그 사이 두 부모 모두 눈 수술을 받아야 했다. 시간이 빠르게 지났고, 1년 후 드디어 갑상선 수술 날짜가 정해졌을 때 의료 공백이 터졌다. 수술을 미루자는 병원 전화에 처음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환자도 아닌 사람이 의료진에게 항의하는 게 맞는지 싶었지만, 부모의 건강 앞에서는 이성이 먹히지 않았다. 며칠 뒤 다시 연락이 왔다. 원래 일정대로 진행하기로 했다고. 그 수술 역시 잘되었다.

어머니는 2년간 여러 차례의 시술과 수술을 겪었다. 예전 같은 생기는 돌아오지 않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일상으로 돌아갔다. 복용하는 약의 가짓수는 늘었고, 당뇨 관리를 위해 매일 운동을 다니기 시작했다. 새 일자리도 구했다. 그렇게 조금의 안정을 찾던 올해 초, 아버지의 건강에 빨간불이 켜졌다. 혈뇨였다. 동네 병원에서 큰 병원을 소개받았고, 대학병원으로 향했다.

대학병원에서는 이전 검사 자료가 화질이 안 좋다며 처음부터 다시 하자고 했다. 한 달을 기다린 끝에 각종 영상 검사와 혈액, 소변 검사를 받았다. 방광은 이상이 없었다. 처음엔 다행이라고 느꼈는데, PSA 수치가 기준을 넘었다. 조직검사가 필요하다는 말에 숨이 멎었다. "혹시 암인가요?"라고 물었지만 의사는 검사를 해봐야 안다고만 했다. 질문을 싫어하는 의사의 권위적인 태도가 마음에 걸렸지만, 어차피 할 수 있는 일은 어머니를 안심시키고 결과를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2주 뒤 결과가 나왔다. 전립선암이었다. 다만 부모와 의료진이 함께 내린 결정은 수술이 아닌 호르몬 치료였다. 85세 아버지가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그 질 자체를 중시한 선택이었다. 호르몬 치료를 두 번 받은 후 수치가 정상 범위로 내려왔다. 계속 치료를 이어나가기로 했다. 다행스럽게도 아버지는 여전히 밥도 잘하시고, 생활의 크기도 변하지 않았다.

그런데 글쓴이는 요즘 부모 없는 미래를 자주 떠올린다고 한다. 혼자 남겨진 후의 고독사를 당연하게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보다 더 아픈 것은 다른 곳에 있다. 부모를 걱정시키는 자신의 모습, 결혼하지 못한 채 경제적으로도 넉넉하지 않은 아들의 모습이 부모에게 얼마나 죄스러운지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철렁한다. 부모는 자신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을 텐데, 그것을 덜어줄 수 없다는 죄책감. 혼자 견뎌야 하는 현실이 가장 크다.

그렇게 2년을 버텨낸 글쓴이는 지금 이렇게 다짐한다. 부모를 지키겠다고. 아버지의 호르몬 치료가 효과를 보고 있고, 어머니도 일상을 되찾았다. 이 상태가 계속되도록,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겠다는 다짐이다. 요양보호사로 일하며 남의 부모를 전문적으로 돌봤던 경험이 결국 자신의 부모를 지키는 일로 귀결되었다. 직업의 관대함과 가족으로서의 책임감이 하나로 통하는 순간이 찾아왔다.


📌 원문 발췌

센터에서 어르신들을 모시다 집에오면 비슷한 환경의 부모님이 계시는데 나는 늘 잊어먹고는 합니다. 센터에서 어르신들이 하시는 행동과 말씀은 이해하며 받아들이지만 집에와서 부모님이 하시는 행동과 말씀은 오히려 이해가 안되어 화가납니다.

원본 출처: 딴지일보 자유게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