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익명 게시판 글쓴이가 6년간 경험한 가족의 별세들을 통해 던지는 질문이 무겁다. "100세 시대"라는 구호가 과연 얼마나 현실적인가.

글쓴이의 관찰에 따르면, 같은 80대 이상의 고령 가족들도 마지막 시기는 극명하게 달랐다. 경제적 안정성, 함께해주는 사람의 존재, 질병이 진행되는 속도—이 변수들에 따라 노년이 존엄으로 마감되는지, 극한의 외로움 속에서 헤매는지가 결정되었다는 점을 그의 경험들이 보여준다.

경제적 여유가 있던 두 분의 말년은 비교적 조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은행에서 지점장으로 일하다 명퇴한 이모할머니는 치매를 14년간 앓으면서도 자택에서 입주 요양사의 보살핌을 받으며 살았다. 글쓴이는 이를 통해 마지막까지 "인간으로서의 존엄"이 유지되었다고 본다. 다른 이모할머니, 교사 출신은 배우자를 오래전 전사로 잃었지만 연금이 있었다. 그 안정이 노년을 지탱한 것으로 전해진다. 둘 다 임종 직전 몇 개월은 병원을 거쳤지만, 그 이전까지 자신의 생활 공간과 리듬을 지킬 수 있었다. 질병 진행도 역설적으로 도움이 됐는데, 암 같은 질환이 고령자에서는 천천히 진행되어 집에서의 마무리 기회를 제공했다는 관찰인 것으로 보인다.

더욱 흥미로운 사례는 혈연 자녀가 없었던 경우다. 캐나다로 이민 간 외고모할머니는 자신의 친자가 없었으나 전 남편의 자녀를 평생 키우며 함께 살았다. 폐렴으로 입원했을 때도 돌봐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조건이 그의 마지막을 형성한 것으로 전해진다. 고모할머니 역시 친자 없이 양자를 입양해 키웠다. 남편을 잃은 후에도 그 양아들과 함께 지냈고, 비록 며느리와의 갈등이 있었더라도 "혼자"가 아닌 구조 속에 있었다. 글쓴이의 평가로는 이 점이 질병의 종류보다 중요한 변수로 작동했다는 뉘앙스를 드러낸다. 혈연의 유무가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사실 자체가 노년의 질을 지탱하는 것처럼 보인다.

역으로, 경제적 안정성만으로는 턱없었던 경우도 있다. 공무원으로 정년퇴직한 작은할아버지는 아내를 먼저 보냈고 자녀가 없었다. 퇴직금으로 물질적으로는 충분했으나, 자녀 없이 혼자 살아갔다. 폐암 진단 후 1년 7개월을 버티며 마지막에는 호스피스 치료를 받았다. 글쓴이는 여기서 고통이 심했다고 기록한다. 돈이 병의 고통을 덜어주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참전용사인 작은증조할아버지는 지뢰 사고로 다리를 절게 되어 결국 결혼하지 않았다. 94세로 ***에서 축사와 양계장을 혼자 운영하며 살다가 노환으로 자던 중 별세한 것으로 전해진다. 90년에 가까운 세월을 혼자 버티며 살았다는 그 자체가 이 사례의 무게다.

여섯 가족의 말년이 남긴 패턴은 명확해 보인다. 경제적 자립도, 함께해주는 사람의 존재, 질병의 진행 속도—이 세 가지가 노년의 질을 결정하는 변수들이라는 인상인 것으로 보인다. 글쓴이가 던지는 질문은 사실상 이것으로 보인다. "100세까지 산다"는 목표도 중요하지만, 그 긴 세월을 누구와 함께, 어떤 조건 속에서 보낼 것인가가 더 구체적이고 절실한 문제 아닌가 하는 점인 것으로 보인다. 단순한 푸념이 아니라 체험 속 성찰이 남긴 무게.


📌 원문 발췌

2020년 이후 근 6년 사이 돌아가신 주위 친척들 나이인데 100세 시대는 솔직히 힘들지 않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원본 출처: 클리앙 모두의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