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대구 시민이 자신의 성장 배경을 묘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주변 대부분이 ***과 ***을 추종했고, 이들을 국가 건설의 주역으로 칭송하는 목소리가 당연했다는 뜻인 것으로 보인다. 글쓴이도 어릴 적엔 그 주변 어른들과 같은 인식 속에 있었다. 도시의 분위기, 학교의 교육, 가정의 대화 모두 그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대학 캠퍼스에서 그것이 균열나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학교 뜰 한켠에 있던 추모비를 본 것으로 보인다. 인혁당사건으로 돌아가신 ***열사를 기리는 비였다. 같은 도시, 같은 시대를 살면서도 기억하는 것들이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깨달음이 찾아왔다. 그 공간은 더 이상 단순한 캠퍼스가 아니라, 서로 다른 역사들이 공존하는 장소로 경험되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전환점은 역사 공부였다. 대구의 현대사를 들여다보니 보도연맹학살, 10월항쟁학살, 경산코발트광산학살 같은 비극들이 이곳에 유독 집중되어 있었다고 한다. 오랫동안 "빨갱이" 낙인이 찍혀 침묵해야 했던 사람들도 그 도시에 존재한 것으로 전해진다. 아무 죄 없이 사라진 이들, 고문과 학살의 대상이 됐던 이들의 기억이 공식적으로는 오랫동안 외면당해 온 것으로 보인다. 주변의 칭송이 그들의 죽음 위에 세워진 것 아닌지 하는 의문이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1980년대 거리 시위의 기억도 다시 읽혀 나갔다. 최루탄 냄새 속에서 들렸던 음성들—"저놈들을 잡아서 총살해야 된다"는 말들이 글쓴이의 어린 마음에 자연스럽게 각인되어 있었다. 이것이 당연한 것처럼 들렸던 시절이 있었다는 뜻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역사를 배운 후, 그 거리에 나간 사람들이 정말 누구였는지, 왜 나갔는지가 새롭게 보이는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단순히 '빨갱이'라는 딱지로 단정 지었던 사람들이 실은 무엇을 원했는지, 무엇을 잃었는지가 물음표로 바뀌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역사를 직면하는 과정은 깊은 변화를 낳는다고 할 수 있다. 글쓴이는 "옛날에 비난했던 많은 분들의 피로 지금 우리나라가 이 자리까지 왔다"는 감각을 갖게 됐다고 전한 것으로 전해진다. 교과서의 숫자들이 누군가의 실제 죽음과 고통을 의미한다는 깨달음이 찾아온 것으로 보인다. 그제야 부모 세대가 당연시했던 칭송이 어떤 기초 위에 서 있는지가 문제가 되어 보였다.
이 변화는 한 개인에 그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글쓴이의 가족, 그중 대구 지역 인척들도 최근 시기에 점진적으로 생각을 달리하기 시작했다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최근 투표 성향에서 그것이 나타났다는 뜻인 것으로 보인다. 거의 대부분이 특정 후보()에 대한 표를 거부했고, 다른 후보()도 선택하지 않았다는 평가다. 물론 ***과 ***을 보는 관점은 여전히 세대 내에서 사람마다 다르다고 한다. 완전한 일치는 아니지만, 그 도시 내에 조용한 균열이 생겨나고 있다는 신호는 읽혀난다고 할 수 있다.
역사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는, 결국 개인의 학습과 경험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결정되는 것처럼 보인다. 글쓴이가 마지막으로 던진 말은 이것이다: "국민들이 흘린 많은 피가 기억되길 바란다." 단순한 추상적 바람이 아니라, 자신의 어린 시절과 지금을 가로지르며 도출한 결론이라는 느낌이 있다. 그것은 또한 같은 도시의 다른 사람들도 서서히 같은 질문에 마주하고 있다는 암묵적 희망을 담고 있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 원문 발췌
제 주변엔 ***을 찬양하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대학시절 학교 뜰 한켠에 인혁당사건으로 돌아가신 ***열사의 추모비가 있었습니다. 어릴 때에는 주변 어른들과 같은 생각 속에 살았습니다.
원본 출처: 클리앙 모두의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