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 부동산 시장이 한창 무르익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한 경제 전문가(***) 의 예측이 상당히 주목받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부동산 가격이 대폭 하락할 거라는 주장이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귀를 기울였고, 나도 그 말을 꽤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처음엔 완전히 틀린 건 아니었다. 부동산 시장이 조정받는 구간도 있었고, 특정 지역의 가격이 내려가기도 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 점에서 보면 기본 진단에 일부 타당성이 있었다고 본다. 문제는 강도였다.

계속 같은 이야기를 반복한 것으로 전해진다. '떨어진다.' '더 떨어질 거다.' '지금이 정점인 것으로 보인다.' 경제 분야는 변수가 너무 많다. 단기 예측도 장기 예측도 외부 충격 하나에 완전히 달라진다. 정책이 바뀌고, 금리가 움직이고, 세계 정세가 요동치면 모든 게 뒤집힌다. 그런데도 마치 100% 확실한 것처럼 밀어붙이는 방식이 계속 거슬렸다. 실제로 가격은 올랐다. 계속 올랐다. 그 예측이 틀리는 동안, 시장은 계속 움직였다.

학자라고 불리는 사람, 전문성을 갖춘 사람일수록 이런 식의 단정은 더욱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논리가 반박 불가능하다고 확신하는 순간, 그건 학문이 아니라 선전에 가까워진다. 마치 자신이 미래를 정확히 본다는 착각. 나는 처음엔 그 전문가를 따랐다. 그게 맞다고, 그게 정답이라고 생각한 것으로 전해진다. 내 확증편향이 그 의견을 꽉 잡고 있었다. 다른 가능성은 애초부터 배제한 것으로 전해진다.

언젠가부터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틀린 예측이 계속되면서, 역으로 내 자신에게 묻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왜 나는 전문가의 말만 그토록 믿었는가? 내 판단은 어디로 갔는가? 내가 무의식적으로 갇혀있는 편견은 없는가? 이런 질문들을 가지면서 깨닫게 됐다. 확증편향은 나 자신에게 깊숙이 박혀 있다는 사실. 아무리 논리적인 주장이라도, 아무리 권위 있는 목소리라도, 결국 내 머리로 비판적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원칙.

그런데 현실은 더 복잡한 것으로 전해진다. 투자와 재테크 자체에 회의감이 생겨버렸고, 행동을 멈췄다. 신중함과 우유부단함의 경계는 생각보다 얇다. 전문가의 틀린 예측 때문에 시작된 의심이, 결국 내 자신의 행동을 마비시켰다. 부동산이 오르는 동안, 내 머리로는 의심하고 있었다. 자본금이 있어도 움직이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기회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갔다.

한 전문가의 오류가 나에게 확증편향의 위험성을 보여줬다. 동시에 '행동하지 않는 것'의 비용도 가르쳐줬다. 틀린 전문가도 문제지만, 그 말을 완전히 따라 멈춰 있는 나도 문제였다는 걸 나중에 깨달았다. 많은 걸 배웠지만, 그것이 기회비용을 치르고 얻은 배움이라는 점이 여전히 마음에 걸린다.


📌 원문 발췌

떨어진다고 이야기하신 이후로 줄곧 가격만 올랐을걸요? 소위 공부를 했다는 사람, 학자는 그렇게 확정적으로 이야기하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원본 출처: 클리앙 모두의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