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정이 폭력으로 붕괴하고, 결국 생명을 잃는 비극이 펼쳐진다.

여동생은 아버지의 간이식 수술이 예정된 바로 전날, 그냥 사라져버렸다고 한다. 아버지는 유일하게 혈액형과 조직 검사가 맞는 딸에게 간 기증을 부탁한 것으로 전해진다. 딸이 승낙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수술대에 올라가기 직전, 딸은 도망쳤다. 결국 아버지는 간 질환으로 사망한 것으로 전해진다. 장례식에 딸은 나타나지 않았다. 사망 후에도 후회나 애틋함이라는 감정은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단절. 완전한 단절이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글쓴이는 결말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이 사건의 뿌리는 훨씬 더 깊다.

청소년기 여동생이 학교에서 큰 사고를 쳤다. 비행도 심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때 아버지의 반응은 결단적이었다. 무차별적으로 때렸다. 훈육이라고 하기 어려울 정도로 말인 것으로 보인다. 한 번의 사건이 영구적인 관계 파괴의 기원이 되어버렸다. 여동생은 공포를 기억한 것으로 전해진다. 분노를 기억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기억들은 그 이후로 모든 순간에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보인다.

관계가 완전히 깨진 순간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여동생이 부엌에서 식칼을 들었다. 아버지에게 그렇게까지 맞은 적이 처음이었다고 한다. 결국 칼은 사용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순간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해 보인다. 이미 관계는 회복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렀다는 뜻이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어머니의 대응인 것으로 보인다. 어머니는 딸에게 '자식 도리'를 강조하며 병원비와 간병의 책임을 촉구했다고 한다. 동시에 과거 자신이 한 폭력을 정당화하려는 발언들도 이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너가 오죱 속썩혔으면 내가 니를 패서라도 사람을 만들려고'라는 식의 말들이었다. 겉으로는 화해와 책임감을 원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폭력 피해자인 딸에게 가해자인 아버지를 돌볼 책임을 전가하는 구조가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가 받아야 할 공감과 치유 대신, 의무와 죄책감만 남겨지게 된 셈인 것으로 보인다.

간이식을 약속했다가 갑자기 도망쳐버린 딸의 선택을 어떻게 봐야 할까. 배신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글을 읽으면 다른 해석도 가능해 보인다. 폭력으로 맺어진 관계에서, 또 다른 형태의 강압을 받으면서, 딸이 가능했던 유일한 선택은 온전한 단절이었을 수도 있다는 뜻인 것으로 보인다. 극단적이고 비극적이지만, 자신을 지키기 위한 자기보호 수단이었을 가능성도 있다는 점인 것으로 보인다.

물론 결말은 최악이었다. 아버지는 생명을 잃었다. 딸은 이 사건을 평생 짊어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 어머니는 두 사람을 동시에 잃게 되었다. 글쓴이가 지적하듯, 이제는 누가 잘못했느냐를 따질 단계가 아니다. 폭력적 훈육이 빚어낸 관계 파괴, 그리고 그 파괴를 봉합하려던 '자식 도리' 담론이 만들어낸 악순환—그것이 남긴 상처는 너무나 크다. 이 가정이 겪은 비극은 한 순간의 선택보다는, 해결되지 않은 상처들이 오랜 시간 쌓인 결과로 보인다.


📌 원문 발췌

여동생은 간이식 수술 직전에 걍 내빼버렸습니다. 아버지는 간이식 못받아서 간질환으로 사망했고요. 여동생은 장례식에도 안오고 아버지가 죽어도 후회나 애틋함 그런거 없이 아예 단절했습니다.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