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폭행당했을 때 느낄 수밖에 없는 무력함이 있다. 특히 법적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면 더욱 그렇다. 한 익명 게시판 글쓴이가 공유한 경험은 그런 무력감과 나이를 이유로 한 관용 요구가 맞닿을 때 벌어지는 일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글쓴이의 아버지는 거리에서 심한 폭행을 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신체 조건의 격차가 컸다는 점이 중요하다. 가해자는 미성년자였고, 당시 중학교 1학년 수준으로 추정되며 운동 경력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반면 아버지는 상대적으로 작은 체형이었다. 한쪽이 명백히 약한 위치에서 당한 폭력이었다는 의미다.

당시 경제적 형편도 어려웠다. 가해자 측의 반응도 적극적인 책임 인정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그 사건은 법적으로 진전되지 않았다. '촉법소년(만 10~14세 미만)'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형사처벌은 불가능하고 보호처분만 가능한, 그 법적 범주 안에서 피해자는 구제받을 길이 좁았던 것으로 보인다.

흥미로운 건 당시 직장 동료의 태도다. 글쓴이의 기록에 따르면 동료는 "촉법소년인데 애기 아닌가, 이해해야 한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고 한다. 피해 가족의 분노는 외면하고, 가해자의 나이와 법적 지위만을 들어 관용을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 이 말이 피해자 입장에서 얼마나 공허하게 들렸을지는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상황이 뒤바뀌었다. 이번엔 그 동료의 자녀가 피해자 입장이 되었다. 초등학교 저학년인 아이가 또래 고학년으로부터 신체적 침해를 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가해자 쪽도 촉법 범주에 속할 수 있는 연령대였다. 상황은 과거 글쓴이 가족이 당한 일과 구조적으로 거의 같았다.

이 순간 글쓴이는 과거의 말을 그대로 돌려주었다고 한다. "촉법소년이니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취지의 말을. 당연히 동료는 크게 반발한 것으로 전해진다. 자신의 아이가 피해자인 상황에서, 그 말은 더 이상 '이해와 관용'이 아니라 '동조와 방치'로 들렸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 교환은 피해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얼마나 조건부인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보인다. 제3자 입장에서는 쉽게 "법이 그렇게 되어 있으니 이해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 피해가 나에게 향할 때, 같은 말은 무의미해진다. 법적 시스템의 결함도 선명해진다. 가해자의 신체 크기나 범행의 수위와 무관하게 촉법 조항 하나만으로 형사책임을 회피할 수 있다는 구조 말인 것으로 보인다.

결국 남는 질문은 이것으로 보인다. 왜 타인의 고통은 이해와 관용의 대상이 되고, 내 가족의 고통은 그렇지 않은가. 이 이중성 속에서 피해자들은 어떻게 보호받을 수 있을 것인가.


📌 원문 발췌

아버지가 길가다가 죽기직전까지 맞았는데 집이 가난하고 촉법이라 그냥 넘어간적이 있어요. 그때 직장 동료가 촉법이면 아니 애기인데 이해해라 했었는데... 저도 촉법인데 뭘알겠어요 이해하세요 이랬더니 난리났어요.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