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쓸 능력도, 거대한 사업을 일굴 역량도, 이제 자식들을 훌륭하게 키워낼 시간도 남지 않았다. 뭔가 의미 있는 흔적을 세상에 남기고 싶었지만 인생의 모든 선택지가 이미 도망친 상황이었다. 그런 막막함 속에서 한 사람은 아주 작은 목표 하나를 발견한 것으로 전해진다. 헌혈 30회 달성.

이 성취 뒤에는 놀랍게도 예상 밖의 변화들이 숨어 있다. 단순한 헌혈의 횟수 기록이 아니라, 그것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 자체가 이 사람의 생활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를 보면, 작은 목표가 얼마나 큰 힘을 가질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부산 출장에서 시작된 기억

예전 의류업을 하던 시절, 부산 출장을 갈 때마다 헌혈을 하곤 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엔 특별한 이유 없이 해왔던 행동이었다. 하지만 수십 년이 흐른 뒤, 그 기억을 새삼 들춰낸 것은 다른 이유였다.

훈장을 받자는 작은 목표. 헌혈 횟수가 쌓일수록 대한적십자사에서 수여하는 명예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 계기였다. 30회, 50회, 100회에 따라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체계다. 이 사람에게는 "뭔가를 남기고 싶다"는 추상적인 욕망이 구체적인 숫자로 변환되었다. 헌혈 횟수라는 측정 가능한 목표.

30회를 향한 연쇄 변화

헌혈을 정기적으로 하려면 건강한 신체 조건이 필수다. 혈액 검사에서 떨어지는 수준의 빈혈이나 질환이 있으면 안 된다. 첫 번째 변화는 운동의 시작이었다. 혈압을 낮추기 위해 본격적으로 러닝을 시작했다고 이 사람은 술회한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았다. 체중을 10킬로그램이나 감량했음에도 불구하고 높아진 혈압이 쉽게 내려오지 않는다는 점이 그 증거다. 의료상 혈압 관리는 단순히 운동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복잡한 신체 조건인 것으로 보인다.

결국 헌혈의집을 방문할 때마다 반복되는 혈압 측정에서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혈압 약물을 처방받게 되었다. 이 모든 과정이 "헌혈 30회를 달성하겠다"는 한 가지 목표를 위해 일어난 일들인 것으로 보인다.

헌혈 자체보다 더 주목할 점은, 이 목표가 만들어낸 연쇄 반응인 것으로 보인다. 운동 습관의 형성, 체중 감량, 약물 관리 — 의료 현장에서는 흔한 조치들이지만, 이 사람에게는 하나의 꿈이 만들어낸 예상치 못한 결과들이었다. 30회라는 숫자에 도달하기까지의 여정이, 동시에 그 사람의 생활 습관 전반을 다시 정돈한 시간이었던 셈인 것으로 보인다.

뿌듯함의 실체

"그렇게까지 해서 달성한 헌혈 30회라서 개인적으로 몹시 뿌듯하다."

이 표현 속에는 여러 겹의 의미가 담겨 있다. 단순히 명예장 하나를 받은 기쁨만은 아니다. 모든 것이 늦은 줄 알았던 삶에서, 이 사람은 "뭔가를 남긴다"는 감각을 헌혈 30회라는 형태로 얻게 되었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숫자에 도달하기 위해 자신이 얼마나 변했는지를 깨달았다는 점인 것으로 보인다.

책도 못 썼고, 사업도 일구지 못했지만, 이 작은 기록은 시간이 흐르면서 50회, 100회로 늘어날 수 있다. 이 사람은 이미 다음 훈장을 향해 50회 도전을 선언한 것으로 전해진다. 작은 기록이 쌓이는 방식, 그것이 이 중년 남자가 발견한 인생의 기록 남기기인 것 같다.


📌 원문 발췌

살아가면서 뭔가를 남기고 싶다는 개인적인 욕망같은데 있었습니다. 그렇게까지 해서 달성한 헌혈30회라서 저 개인적으로 몹시 뿌듯하고 자랑스럽기도 합니다.

원본 출처: 딴지일보 자유게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