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진보진영 내에서 누군가를 비판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한 익명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을 보면, 그 순간 비판의 내용보다 '낙인'이 우선된다는 지적인 것으로 보인다. "반명(반***)"이니 "뉴재명(신***)"이니 하는 꼬리표가 댓글에 먼저 달린다는 것이었다. 글쓴이의 경험으로는, 진보층 내에서는 모두가 한 마음인 양 단일한 입장만 유지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집단에서 벗겨지는 낙인을 받는 구조가 있다고 봤다.

원래라면 "비판받을 게 있으면 비판받고 받아드릴 부분은 받아드리면 된다"는 게 민주주의의 상식인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현실은 다르다는 뜻이었다. 글쓴이가 느낀 진보진영은 "혼연일체화"되어 있었다. 누군가를 비판하면 곧 어느 파벌에 속하는지 판단받는 경험을 반복한다는 의견이었다.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이 글의 끝인 것으로 보인다. "이 글에도 또 뉴재명이니 반명이니 하는 댓글이 달릴까 무섭습니다"라는 표현. 글쓴이가 비판을 건넨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같은 진영에서 받을 낙인을 예상하고 있었던 셈인 것으로 보인다. 글을 올리기 전부터 방어막을 친 것. 이는 진보진영 내에서 발화하는 비용이 얼마나 높아졌는지를 보여주는 신호로 보인다.

내용 검토보다 진영 분류가 우선되는 문화도 한몫한 것으로 전해진다. "손가혁" 같은 다른 낙인들도 있다는 점에서, 비판 글이 올라올 때마다 먼저 발언자가 어느 진영에 속하는지 판단한 후, 그에 맞는 꼬리표를 붙이는 패턴이 형성되었다는 뜻이었다. 글의 논리나 근거는 나중 문제고, 발언자의 '진정성'을 먼저 심사하는 식인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정당한 비판도 낙인 앞에서 목소리를 잃기 쉽다.

글쓴이는 ***도지사에 대한 비판도, *** 대통령에 대한 비판도 정당하다고 봤다. 같은 진영이라고 해서 모든 정책과 모든 인물을 무조건 옹호해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는 의미였다. ***도민들의 입장에서 ***도지사 정책을 평가하는 것도 정당한 시민 활동이고,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 대통령을 평가하는 것도 시민의 권리라는 뜻이었다.

비판 발화 비용이 높아질수록 진보진영 내 피드백 루프가 닫힌다. 글을 쓸 때마다 낙인 댓글을 피하기 위해 미리 입장을 정리해야 하고, 혹시 모를 오해를 풀기 위해 장황한 설명을 덧붙여야 한다. 결국 같은 진영 내에서도 자유로운 비판과 논의가 이루어지기 어렵다. 한 누리꾼의 경험담이지만, 이런 두려움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게 문제다.

글의 마지막 요청은 명확한 것으로 전해진다. "서로 비판은 하되 비꼼과 분열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글쓴이는 비판과 분열을 명확히 분리하고 싶어 한다. 적절한 비판을 수용하는 것이 건강하다는 원칙이, 진영을 가르지 않는 기본이라면 더욱 그렇다. 같은 진영이라고 해서 경쟁과 검증 없이 나아갈 수는 없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 원문 발췌

누굴 비판하면 반명이고 누굴 비판하면 뉴재명이다 라며 서로 알아서 분열하는게 제일 문제인 것 같습니다. 이 글에도 또 뉴재명이니 반명이니 하는 댓글이 달릴까 무섭습니다.

원본 출처: 클리앙 모두의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