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연락 한 통

아침이었다. 아무것도 예상하지 못한, 평범한 아침. 그런데 연락이 왔다. 교통사고가 났다는. 겨우 40초반이었다는 말이 자꾸 떠올랐다.

이 나이면 아직 할 일이 많은데. 자녀를 키우고, 아내와의 인생을 함께하고, 부모님을 돌봐야 할 때인데. 근데 모든 게 아침 한 통의 연락으로 끝나버렸다.

남은 가족들

***와 초등학생 딸. 아침을 준비하며 남편이 출근하는 모습을 본 게 마지막이었을 거다. 그때 아내는 혹시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자녀는 학교 가기 싫다며 칭얼대고 있었을까. 평범한 아침의 일상들이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깨닫기 훨씬 전에, 그것들이 사라졌다.

교통사고는 질병과 다르다. 급성 질환 진단을 받으면, 최소한 시간이 있다. 가족들이 마음의 준비를 하고, 남겨질 일들을 정리하고, 중요한 말들을 나눌 기회가 생긴다. 하지만 교통사고는 그마저도 주지 않는다. 예고 없이, 갑자기, 완전히. 이것이 이 비극을 더욱 참담하게 만드는 이유다.

누군가는 "운이 없었다"고 말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건 운의 문제가 아니다. 누구에게나 벌어질 수 있는 일이라는 뜻인 것으로 보인다. 아침에 출근하는 가장, 회사 가는 누군가, 장을 보러 나가는 누군가. 그 누구든 그날 그 시간에 그곳에 있지 않을 이유는 없다.

남은 공백

넷째고모는 이 막내아들을 정말 각별히 사랑한 것으로 전해진다. 보통의 조카사랑을 넘어 정말 애지중지해온 아들이었다고 한다. 엄마의 무릎은 텅 빌 것이고, 그 손은 갈 데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의 아내는 이제 남편 없는 삶을 살아야 한다. 초등학생 딸은 아버지를 잃었다. 이들이 감당해야 할 것은 슬픔만이 아니다. 경제적 공백, 정서적 공백, 일상 속 수천 가지 자그마한 역할들이 갑자기 사라진다. 밥을 먹을 때, 학교 숙제를 봐줄 때, 밤이 무서울 때 옆에 있어줄 사람이 없어진다.

글을 쓰면서도 무력감만 느껴진다. 뭐라 말해줄 수 있을까. 시간이 치유한다는 말은 아직 몇 시간도 안 지난 마당에 너무 공허하지 않을까. 함께 슬퍼할 수 있다는 건 그들의 슬픔에 비하면 너무 가볍지 않을까.

덧없는 삶

이제 겨우 40초반. 이 나이에 누가 죽음을 생각하나. 내일을 당연하게 믿으며, 내년 휴가를 계획하고, 자녀의 미래를 그려본다. 대부분이 그렇게 산다.

그런데 그 내일이, 내년이, 미래가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우리는 안다. 세상 수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간다는 걸 뉴스에서 본다. 하지만 그게 나, 내 가족이 될 거라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통계는 남의 일이니까.

아침 한 통의 연락이 그 모든 확신을 무너뜨렸다. 삶이 얼마나 덧없는지, 일상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줬다.


📌 원문 발췌

이제 겨우 40초반인데 ***와 초딩 딸을 두고 뭐가 그리 급해서... 아침에 교통사고 났다고 합니다.

원본 출처: 딴지일보 자유게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