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을 보낼지 말지를 두고 시모와 계속 충돌하고 있다는 사연인 것으로 보인다. 처음엔 아이 성향이 순하다며 어린이집 등원을 강하게 반대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가 좀 활발해지자, 이번엔 "그런 활발한 성격은 오히려 어린이집에서 더 문제가 될 것 같다"고 하며 여전히 반대한다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아이가 어떤 성격이든, 어린이집에 보내지 말라는 입장으로 보인다. 이 모순된 논리는 시모가 어떤 이유로든 자신의 의견에 따르길 원한다는 뜻으로 읽힌다.
글쓴이는 이 갈등의 근본 원인이 경제적 지원과 실질적 돌봄 참여의 부재에 있다고 느낀다. 시모가 양육비를 채우거나 아이를 직접 돌본 적이 거의 없다는 뜻인 것으로 보인다. 기저귀를 갈 때도, 밥을 먹일 때도 손 한 번 거들지 않으면서도, "아이는 이렇게 이렇게 키워야 한다"는 지적과 조언은 자꾸만 떨어진다. 자녀 양육에 드는 모든 책임과 경제적 비용을 며느리 혼자 짊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지원 없이 간섭만 받는 것의 피로는 말할 수 없다.
처음에는 그냥 흘려넘기려고 했다고 한다. 한두 번 들으면 웃고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같은 지적이 계속해서 반복되다 보니 마음이 달라진다. 혹시 내가 뭔가 크게 잘못 키우고 있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고, 매번 들을 때마다 자신의 양육 방식이 부정받는 기분이 든다. 양육에는 정답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일방적인 지시가 반복되면 자신감이 흔들린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기 의심과 불안이 쌓여간다.
어른을 공경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으며 자랐다. 그 가르침이 틀렸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다만 현실에서 만난 어른이, 공경받을 만큼 책임 있는 조언이나 행동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혼란이 생긴다. 간섭만 하고 책임은 전혀 지지 않는 사람을 공경해야 한다는 일이 과연 타당한가. 자신이 너무 감정적이거나 불효한 건 아닌가. 사회가 요구하는 공경의 의무와 현실에서 경험하는 불균형 사이에서, 글쓴이는 깊은 혼란 속에 놓인다.
그렇다면 시모의 조언이 진정으로 설득력을 가질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은 무엇일까. 아마도 직접 기저귀를 갈고, 밥을 먹이고, 아이와의 일상을 함께하며 얻은 실제 경험이 아닐까. 함께 겪은 것에서 우러나오는 말이라야 설득력이 생기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현장에 없으면서 일방적으로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하면 안 된다"고 재단하는 것은, 조언이라기보다는 통제에 가깝다. 책임 없는 간섭일수록 상대에게 더 깊은 상처가 되는 법인 것으로 보인다.
📌 원문 발췌
기저귀 한 번, 밥 먹을 때 밥 한 번 먹여본 적도 없으신 분이 왜 그러실까 한다. 흘려듣는 것도 한두 번이지 반복되니 진짜 답답하다.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