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서의 살림은 생각보다 무겁다. 반찬가게가 없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국내라면 당연하게 사 먹을 수 있는 한반찬들을 이곳에서는 손으로 만들어야 한다. 김과 김치라도 사 먹을 수 있으면 다행이지만, 나머지는 전부 직접 준비해야 한다. 한끼 저녁 상 위에는 부침개, 된장찌개, 콩나물무침, 시금치무침, 제육볶음, 파절이, 계란찜이 올라간다. 점심은 계란볶음밥, 미역국, 샐러드, 오이무침을 차린다. 이 정도면 누구나 외국에서도 한식 하나만큼은 품질을 유지하려는 아내의 의도를 이해할 법도 한데.

음식에 대한 평가는 왜 가사노동이 아니라 '사랑의 척도'가 되는가.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린 사연에 따르면, 어떤 남편은 아내가 음식을 조금만 틀릴 때마다 '사랑이 없네'라고 말한다고 한다. 어쩌면 농담처럼 들릴 수 있지만, 그 말이 집에서 반복되면 어떤 신호를 보내는가. 요리의 완성도가 곧 아내의 정성이고, 음식의 맛이 곧 애정의 증거라는 메시지가 쌓인다.

더 문제인 것은 이 말이 자녀 앞에서 습관처럼 반복된다는 점인 것으로 보인다. 중학생 아들이 엄마의 요리에 대해 자연스럽게 질문한 것으로 전해진다. '왜 질퍽할까?' 라는 순수한 호기심이었을 뿐인 것으로 보인다. 아버지가 그 질문을 받아치는 방식이 알려준다. 아버지는 웃음과 함께 아이에게 말했다는 것. '이게 다 엄마의 사랑이 부족해서 그러는 거야.' 그 말이 몇 번 반복되자, 아들도 그 표현을 학습한 것으로 전해진다. 자녀는 부모의 언어를 거울처럼 비추는 존재다.

이 모든 게 무의미해 보일 정도의 순간들이 있다. 남편이 상황을 웃음으로 무마해 버릴 때다. 아내가 말을 꺼내면, 남편은 '아, 그럼 엄마가 삐쳤나봐. 말 조심해야지'라고 웃는다. 그 순간 아내의 진지한 고민은 '기분 상한 것'으로 축소된다. 불만은 무시되고, 대화는 끝난다. 이게 가정 내 역학에서 가장 눈에 띄지 않게 작동하는 방식인 것 같다.

배경도 있다. 지병으로 약을 먹는 중이고, 재택근무는 수입이 미미하다. 남편이 밖에서 하나의 급여만으로 가정을 지탱하는 것도 무겁다는 걸 안다. 그럼에도 정황이 바뀌지 않는다. 반찬 하나가 덜하거나 맛이 조금 빗나갔을 때는 목소리가 나온다. 하지만 지난 몇 개월 동안 반찬가게도 없는 외국에서 한식을 지어온, 매끼 새로 시작되는 그 노력을 누가 말해줄까. 가사는 축적되지 않는 일인 것으로 보인다. 결과물 하나가 평가의 전부다.

'사랑이 부족하다'는 말이 농담이었을지는 몰라도, 아내는 매일 그 말을 들으며 산다. 그리고 이제 아들도 그 말을 배웠다. 이게 자녀에게 전해지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엄마의 음식에 대한 느낌일까, 아니면 남녀와 가정 내 역학에 대한 학습일까. 그 질문이 가장 무겁다.


📌 원문 발췌

남편은 사랑이 없네합니다. 문제는 중학생 아들도 따라하기 시작했어요. 남편이 '이게 다 엄마의 사랑이 부족해서 그러는거야' 하면서 웃길래.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