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가 할머니 목소리를 알아본다는 게 신기했다던 친정엄마의 그 한 통화. 그게 이렇게까지 연쇄되리라는 건 당사자도 예상하지 못했던 것 같다.
친정에 9개월 된 딸을 데리고 간 어느 날, 시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기가 반가워하는 목소리를 듣자, 친정엄마가 마주친 감정은 자신의 어린 시절로 거슬렀다. 할머니·할아버지를 일찍 잃어 기억도 없다던 그분은 손녀가 체험하는 '할머니와의 관계'가 얼마나 소중한지 실감했고, 자연스레 입 밖으로 나온 말이 있었다. "오래 사세요."
덕담이었다. 또는 그렇게만 봐야 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82세 시어머니가 그 말을 받은 감정은 달랐던 모양인 것으로 보인다. 전화를 끊은 후 남편에게 온 연락은 '밤샘'이었다. 딸에게 전한 일과는 더 구체적이었다. 60대 중반인 친정엄마가 자신보다 16세나 젊다는 점을 강조하는 건 아닌지, 혹은 자신의 죽을날을 정해 놓고 말하는 건 아닌지 하는 의심까지 품었다는 것으로 보인다. 나이가 들수록 '오래 사세요'라는 인사말이 순순한 덕담으로만 들리지 않을 수 있다는 감정의 온도차가, 여기서 극명하게 드러나 보인다.
더 복잡한 건 이게 처음이 아니었다는 점인 것으로 보인다. 아기 백일잔치에서도 비슷한 말이 오고갔다. 그때도 친정엄마가 88세인 시아버지에게 "오래 사세요"라고 했고, 시어머니는 그 순간을 지금까지 마음에 담아뒀다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같은 말이 두 번째로 터져 나왔을 때, 단순한 우연이 아닌 의도적인 뉘앙스로 느껴진 것 같다. 남편이 처음엔 아내에게 말하지 않으려 했다가 나중에 오해가 커질까봐 전한 이유도 여기 있을 터다.
아내가 친정엄마에게 전한 후, 친정엄마는 직접 시어머니에게 전화를 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럴 의도가 없었다고, 죄송하다고, 마음을 풀어달라고. 시어머니는 답한 것으로 전해진다. 네, 마음이 풀렸습니다—라고.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오해는 풀렸지만, 친정엄마가 입은 감정의 상처는 남았다. 이미 어제 사 뒀다던 삼계탕 재료가 있지 않은가. 차라리 처음 태도로 시어머니를 대했다면 더 편했을 테지만, 이제 상황은 꼬여 있었다. 친정엄마가 시어머니를 '엄마처럼' 생각했고, 매해 명절마다 과일박스를 보냈던 것들을 생각하면.
이 사건이 흥미로운 지점은 선의의 흔적이 곳곳에 보이는데도 오해가 깊어지는 과정이라는 점인 것으로 보인다. 친정엄마는 적대적이지 않았다. 단순히 자신의 공허했던 어린 시절을 아기가 채워주지 못하는 현실에 감정이 흔들렸을 뿐인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 한 순간의 말이 남편을 거쳐, 아내를 거쳐, 다시 친정으로 전해지면서 점점 투명도가 흐려졌다. 직접 해석되지 않은 언어는 전달 경로마다 증폭되는 경향을 보인다고 할 수 있다.
나이 차이가 만든 언어의 온도차. 그리고 당사자 간 직접 해명이 아닌 간접 전달이 빚을 수 있는 감정의 비용. 덕담의 의도와 수신자의 해석 사이에는 때론 이렇게 큰 간격이 생길 수 있다는 걸 이 사연은 보여준다. 오해가 풀린 뒤에도 남은 상처는, 결국 그 간격을 직시하는 것에서 시작될 수 있을 것 같다.
📌 원문 발췌
우리 애기가 할머니 목소리를 알아보네요 저는 할머니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기억이 없어 아쉬워요 사돈~~ 오래 사세요 / 너무 서운하고 기분 나빠 밤새 잠못 주무셨다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