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 아들이 잠복고환으로 수술을 받게 되었다. 대학병원에서의 입원 수술은 보통 당일 완료되지만, 이번엔 3일을 입원해야 한 것으로 전해진다. 외벌이 가정에서 가정보육 수당 100만 원대로 생활하는 와중의 돌발적 입원이었다.

수술 당일, 아들의 회복을 염려하는 연락들이 이어졌다. 친정어머니는 남편을 따로 불러 봉투를 건넸다. 수술비를 보태고, 퇴원 후 좋은 것을 사가지고 오라며 오백만 원을 손에 쥐어주셨다. 이런 규모의 지원은 외벌이 가정에 얼마나 큰 신호였는지 모른다.

친정 오빠도 빠지지 않았다. 퇴원할 때 아이들을 위해 용돈을 챙겨왔다. 이렇게 움직이는 가족을 보며 "우리가 챙겨진다"는 걸 느끼는 건, 금액의 크기보다 존재를 인정받는 느낌인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시어머니의 대응은 달랐다. 처음엔 전화만 했던 시어머니가 수술 당일 병원을 찾아왔다. 할머니가 손자를 직접 챙기러 온 거라고 생각하며 반가워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남편의 말은 이상한 것으로 전해진다. 시어머니가 '얼마를 줄까'를 먼저 물었다는 것. 그리고 남편이 불필요하다고 거절했거나 필요 없다는 뉘앙스를 풍겼다는 것. 결국 시어머니는 아무것도 챙기지 않고 돌아갔다.

복잡한 기분이었다. 남편한테 시댁의 반응이 이상하지 않냐고 물었더니 남편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시어머니가 '얼마를 줄까'라고 물었는데 남편이 그걸 거절했다는 것, 그리고 남편은 오히려 글쓴이에게 "넌 왜 돈을 거절했어?"라고 되묻는다. 부부가 시댁에 대해 가진 기대치가 완전히 다르다는 걸 그 순간 알게 되었다.

더 생각해보니 이상한 점들이 계속 눈에 띄었다. 내가 임신 합병증으로 자궁경부 단축 진단을 받았을 때를 생각해봤다. 한 달반을 누워만 있다가 그 같은 대학병원에서 출산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때 시어머니는 단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다. 아마도 출산 후 며느리를 보는 게 불편했을 수도, 아니면 우울할까봐 일부러 피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손자가 수술을 받으니 택시를 타고 병원에 나타났다. 이 모순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돈이 없는 집도 아닌데 왜 이럼. 예의나 체면이 없나" 하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시어머니의 행동 패턴을 보며 뭔가 빠진 느낌이 들었다. 금액의 차이가 아니라 '인식의 차이'가 만드는 괴리감이었다.

시댁과 친정의 온도 차이는 액수로 재기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넌 우리 가족이야"라는 신호를 보내는가, 아니면 그 신호조차 고민하지 않는가의 차이였다.

외벌이에 쌍둥이를 키우는 처지에서 아이의 수술은 금전적 지원만큼이나 심리적 버팀목이 절실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친정은 그걸 알았거나 적어도 챙기려 했고, 시댁은 그렇지 않았다는 게 자꾸 마음에 걸렸다.

"얼마를 줄까"라고 먼저 묻고, "넌 왜 돈을 거절했어"라고 되묻는 것. 그리고 출산 때는 오지 않고 수술 때만 온다는 일관성 없는 행동. 이런 것들이 쌓일 때 가족으로서의 유대감이 흔들린다는 게 문득 느껴졌다.


📌 원문 발췌

아이들 수술한 병원에서 내가 애낳았는데 나 애낳았을땐 안옴. 근데 손자 수술하니 택시타고 오데?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