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시간이 한 시간 밀린 것이 자매를 갈라놓았다.
암 4기로 항암 투병 중인 아버지와의 점심 약속이었다. 원래 예정은 오전 11시. 글쓴이는 부모님을 모시고 가야 했기에 10시 20분 출발을 이미 정해놨다. 식당까지 대략 40분이 걸리니, 시간 계산을 정확히 해서 아버지가 기다리지 않도록 하려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 아버지는 몸무게가 48kg까지 떨어져 있었고, 항암의 부작용으로 식사량도 적은 상태였다. 그래서 먹는 것 하나하나가 소중한 것으로 전해진다.
10시 10분, 동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사정이 생겨서 한 시간 늦춰달라는 요청. 글쓴이는 수락한 것으로 전해진다. 약속은 12시가 됐다. 그 순간만 해도 둘 사이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고 한다.
문제는 그 1시간 동안 벌어진 일이었다.
아버지는 11시 약속을 알고 있었다. 기다리다가 배고픔을 느끼셨다. 항암 치료 중엔 약도 제때 먹어야 하니까, 결국 집에서 고기를 몇 점 드셨다. 그런데 항암 환자에게는 한 끼 섭취량이 중요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미 집에서 먹으니 외식 자리에서 제대로 드실 수 없는 상황이 생겨버린 것으로 보인다.
글쓴이가 느낀 것은 안타까움이었다. "다음에는 약속시간을 지켜줬으면 좋겠어. 아빠도 11시까지 기다리셨잖아." 간단한 말이었다. 약속 준수의 중요성을 언급한 것이고, 기다린 아버지를 고려해 다음에는 더 신경써달라는 당부였다. 그런데 동생의 반응이 완전히 달랐다.
여기서 갈등의 실체가 드러났다. 글쓴이가 한 말은 사실 전달이었지만, 동생이 받아들인 것은 책망이었다. 같은 말이 다르게 들렸던 것으로 보인다.
둘의 전제가 근본적으로 달랐다. 글쓴이의 입장은 이랬다: 항암 투병 중인 부모가 기다리지 않는 것이 최우선인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약속 시간을 지키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기본 예의다. 동생의 입장은 달랐다: 가족인데 1시간 정도 늦는 것이 무슨 큰 일인가. 나에게도 급한 사정이 있었는데, 왜 내 사정은 고려하지 않는가. 배려 있는 가족이라면 그런 식의 지적을 하지 않는 것 아닌가.
두 명이 말하는 '가족의 의미'가 달랐다. 글쓴이는 약속과 책임감을, 동생은 이해와 배려를 강조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화가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었던 구조다.
동생의 상황도 나름의 무게가 있었다. 최근 신도시에 아파트를 구입하면서 대출 문제와 인테리어로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체중까지 5kg이나 떨어진 상태였다. 정신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여유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언니의 지적이 "너는 가족을 배려하지 못하는 사람이야"라는 메시지로 들렸을 가능성이 크다. 동생도 이미 힘든데 더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을 것 같다.
대화는 계속 엇갈렸다. 글쓴이가 "약속을 지키자"고 말하면 동생은 "내 사정이 있다"고 반박한 것으로 전해진다. 글쓴이가 "상대방께 양해를 구하는 것이 예의다"라고 설명해도 동생은 "가족끼리 왜 그렇게까지 경직되냐"고 받았다.
결국 글쓴이는 사과한 것으로 전해진다. 옳고 그름을 따지는 대신, 아버지의 투병 상황을 우선시하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 자매가 싸우는 동안 아버지가 얼마나 불편하실까 하는 생각이 더 무거웠던 것 같다. 이것은 글쓴이가 약해서가 아니라, 현재의 우선순위를 현명하게 재정렬한 선택이었다.
가족 갈등의 많은 경우는 "누가 맞는가"가 아니라 "지금 무엇이 더 중요한가"라는 질문 앞에서 결정된다. 이 사연은 그런 질문이 얼마나 어렵고, 그 답이 얼마나 무거울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다.
📌 원문 발췌
'왜 아빠가 고기를 드셨다고 나에게 말해? 그건 앞으로 나한테 시간을 잘 지켜라 라고 말하고 싶은거잖아, 나라면 사정이 있을 동생에게 이런 말은 안해'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