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5년 을사조약 이후, 이 땅의 역사는 두 편으로 나뉘었다. 조국을 판 자들과 항거한 자들. 그 경계는 가족 안으로도 깊게 새겨졌다. 을사오적 중 한 명인 ***는 조국의 운명을 다른 쪽으로 기울였고, 그의 후손들은 그 무게 아래 살아가야 한 것으로 전해진다.
***의 손자로 태어난다는 것. 그것은 물려받은 치욕이자 동시에 스스로 정의해야 할 몫이었다. 역사는 단순하게 개인을 종속시키지 않는다. 어떤 이들은 그 낙인을 인정하면서 살고, 어떤 이들은 그것을 거부한다. ***는 후자를 선택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그 선택이 얼마나 고독했을지는 거의 기록되지 않았다.
***는 을사오적의 후손으로서 누릴 수 있는 것들을 모두 거부했다고 알려져 있다. 집안의 이름, 자산, 영향력—모든 것을 외면하고 대한광복군의 심리전 부서에 몸을 담았다. 단순한 독립운동이 아니었다. 심리전이라는 것은 적의 마음을 흔드는 일이었다. 전장에서 총보다 먼저 불신과 동요를 키워내는 무기.
그것이 조부의 '선택'에 맞서는 그의 방식이었나. 역사는 기록하지 않았다.
기록에 남은 말들이 있다. "할아버지는 왜 자결하지 않고 후손을 욕보이는가." 한 인간이 자신의 조부를 이토록 직설적으로 질책한다는 것. 그것은 단순한 비난이 아니라, 세대 간 윤리의 단절을 선언한 것이었다.
조부의 길을 따르지 않겠다는 약속 이상으로, 조부의 선택 자체가 옳지 않았다고 공식적으로 말한 것으로 보인다. 가족 내에서 벌어지는 이런 단절은 얼마나 깊은 상처였을까. 그것을 버틸 수 있는 신념은 무엇이었을까.
흥미롭게도, 광복 이후 ***는 자신의 독립운동 경력을 내세우지 않았다.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정부 수립 후 지위를 얻고 영향력을 유지한 데 반해, 그는 침묵한 것으로 전해진다. 광복군에서의 활동도, 심리전 담당도 공적인 자산으로 쓰지 않았다.
그러다 6·25전쟁이 터졌다. 이미 중년에 접어든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원입대한 것으로 전해진다. 국방부 정훈부에서 활동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정훈부—군의 사상 교육과 선전을 담당하는 부서. 다시 심리전의 영역이었다. 그의 삶은 어떤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 같다.
1990년, ***는 한 아파트의 침실에서 위암으로 눈을 감았다. 특별한 발표문도, 기념도, 조명도 없었다. 그저 한 인간이 생을 마감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의 자리는 현충원에 있다. 을사오적의 후손이 아니라, 독립운동가이자 6·25 참전자로서 국가가 인정한 위치에서. 그것이 그의 삶이 남긴 의미였다. 조부의 업적을 거부하고, 자신의 업적을 내세우지 않으면서도, 결국 역사는 그의 선택을 기억한 것으로 전해진다.
침묵 속에 완성된 삶이란, 어쩌면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
📌 원문 발췌
을사오적 ***의 손자이지만 특혜를 거부하고 대한광복군에서 심리전을 당담함. 광복 후 그는 독립운동한 것을 내세우지 않고 6.25 당시엔 자원입대하여 국방부 정훈부에서 활동.
원본 출처: 루리웹 베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