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이 여행을 정말 좋아하신다는 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어요. 어디든 가는 걸 즐기셨고,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뻐하시는 분들이셨거든요.

한국에 머물러만 있어도 항상 다음 여행 일정을 궁금해하셨고, 가족들과 함께한 여행 이야기를 밥 먹을 때도 술 마실 때도 계속 꺼내셨습니다. 그런 부모님의 모습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저도 여행에 빠져 있었어요.

칠순을 맞으신 올해 기념으로 해줄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생각했을 때, 진짜 선물은 경험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모님이 오래전부터 가고 싶어 하셨던 유럽행을 선물해드리기로 결정했어요.

다만 단순히 표를 사서 "여행 가세요" 하는 것보다, 부모님이 실제로 그 여행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맞춰주는 게 훨씬 더 중요했습니다. 같은 금액의 선물이라도, 그걸 받는 사람이 실제로 누릴 수 있느냐 없느냐가 나뉘기 때문이었어요.

여행 기간 설정, 비용 조율, 그리고 여행 중 부모님이 정말 집중할 수 있는 것이 뭐인지까지 계산해야 했습니다. 그 첫 번째 배려가 바로 카메라 업그레이드였습니다.

기존에 쓰시던 dslr은 충분히 좋은 기종이었어요. 부모님도 그 카메라로 많은 사진을 남기셨고 애정도 있으셨습니다.

하지만 여행할 때마다 나오던 한숨이 있었어요. 그 무게가 부담스럽다는 거였죠. 칠순이신 나이에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발목이 아프고, 어깨가 결리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여행 가는 길에 이미 피곤을 느끼시는 모습이 눈에 띄었습니다.

조금 더 가볍고 다루기 쉬운 미러리스로 바꿔드렸을 때, 부모님이 처음으로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신 게 지금도 기억에 남아요. 무게 몇 백 그람의 차이가 이렇게까지 표정을 바꿀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습니다.

같은 여행을 가더라도, 짐이 무거우면 처음부터 카메라를 들고 나갈 마음이 줄어드는 법이거든요. 좋은 카메라가 주머니에 가볍게 들어가야, 언제 어디서든 꺼내 쓸 수 있게 되는 거 아닙니까.

비용을 따지자면 적지 않았습니다. 카메라와 여행 예약, 그리고 여행 중 쓸 용돈까지 챙기다 보니 지난해 주식 수익의 절반을 써버렸어요. 자조 섞인 웃음이 절로 나올 정도였죠.

그럼에도 후회가 없는 건, 그 돈이 부모님의 삶에 실제로 행복을 더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직장이 바빠서 주식 투자까지 할 정도니까, 그 돈을 다른 곳에 쓸 기회도 많았을 거예요. 하지만 부모님의 웃음이 돈을 버는 것보다 귀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제 밤이었어요. 바쁜 와중에 어머니가 찍으신 유럽 사진을 뒤늦게 받아서 눈을 비비며 열어봤는데, 그걸 보다 보니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미러리스로 섬세하게 담은 컷과 휴대폰으로 재빠르게 남긴 순간 사진들이 섞여 있었어요. 전문적인 기법이나 구도는 없지만, 어머니의 눈으로 본 유럽이 고스란히 담긴 사진들이었습니다.

더 놀라웠던 건 사진의 다양성이었어요. 유명한 관광지도 있었지만, 골목길의 그늘진 벤치, 카페의 창밖 풍경처럼 누군가는 지나칠 수도 있는 장면들이 이렇게 정성껏 담겨 있다니 말이에요.

여행에서 돌아온 후 나온 부모님의 말이 정말 예상 밖이었습니다. 내년엔 ***에서 한 해를 살면서 천천히 그곳의 일상을 카메라에 담고 싶다는 거였어요.

며칠 다녀온 여행이 아니라, 1년을 살면서 한 계절 한 계절을 기록하고 싶다니요. 이번 칠순 선물 여행이 부모님의 여행 욕구를 생각지 못할 정도로 크게 키웠다는 뜻이었죠.

그렇다면 자식인 제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합니다. 내년의 그 비용을 또 벌어야죠. 더 열심히 벌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올해 주식 수익의 절반을 쓴 것도 결국 내년을 위한 투자이자, 부모님의 행복을 위한 또 다른 선물을 준비하는 과정인 셈이에요. 어쩌면 이게 진짜 선물의 의미일지도 모릅니다.


📌 원문 발췌

칠순 기념으로 유럽 여행을 보내드렸습니다. 기존에 쓰시던 dslr도 좋은 기종이지만, 무게 때문에 여행때 부담스러워 하시길래.

원본 출처: 딴지일보 자유게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