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둘을 키우는 엄마의 일상 속에서 예상 밖의 갈등이 터져나왔다. 친구와 함께 아울렛과 마트를 들렀을 때의 일인 것으로 보인다. 친구는 장바구니에 물건을 거의 담지 않고 있었다. 왜 구매를 안 하냐고 묻자, 친구는 "따로 사는 곳이 있다"는 대답을 반복한 것으로 전해진다. 달걀을 한 판 사라고 권유해도 거절한 것으로 전해진다. 더 비싼 옵션을 선택한다는 것이었다.

이야기는 카페에서 더 격해졌다. 친구가 아이 둘에게 해주고 있는 교육 활동을 듣게 된 것으로 보인다. 수영, 미술, 발레, 영어 같은 학원들. 글쓴이는 직설적으로 물었다. 그렇게 굳이 학원에 투자할 필요가 있는가. 노후 자금 준비가 더 중요하지 않은가. 아이들이 나중에 부모를 챙길 리 없다고.

친구의 표정이 변한 것으로 전해진다. "너가 우리 애를 다 키운 것도 아니면서, 어떻게 그런 말을 하는 거야?" 대화는 거기서 끊겼다. 남겨진 것은 불편한 기분뿐이었다.

글쓴이의 입장은 명확한 것으로 전해진다. 가정의 형편이 여유롭지 않은데, 왜 꼭 '필요 없는' 것들에 돈을 쓰는가 하는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아이들은 서점에서 사온 학습지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해하고, 학교생활도 잘한다. 무료 물놀이장이나 도서관으로도 충분하다. 절약하고 미래를 챙기는 게 더 현명한 선택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그 말이 충고라고 여겼다. 상대의 사정을 알기에 더욱 그러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조금 다른 각도에서 보면 어떨까. 글쓴이는 자신의 경제적 제약을 어느 순간 '올바른 육아 철학'으로 변환해 버렸던 것 같다. 절약이 정답이고, 실용성이 미덕이고, 미래 준비가 책임이라는 신념 말인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되면 다른 선택을 한 사람의 존재가 그 신념을 흔드는 위협으로 느껴질 수 있다. 무의식적으로, 상대를 같은 쪽으로 끌어당기고 싶어진다. 계속 지적하고, 계속 권유하고, 계속 경고하게 된다.

친구의 반응이 나온 배경을 거기서 찾을 수 있다. 달걀, 유기농 식재료, 학원비까지. 한두 번이 아니라 여러 번 비판받았다. 자신의 선택이 계속 문제시되는 느낌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터져 나온 말이었다.

여기서 놓치기 쉬운 점이 하나 있다. 상대의 사정을 안다고 해서 그것이 개입할 권리를 주는 건 아니라는 것으로 보인다. 글쓴이는 친구가 학원비 부담을 느낀다고 알고 있었다. 그래서 시작된 충고였다. 하지만 정작 친구는 그 조언을 구한 적이 없었다. 필요했던 것은 자신의 선택을 존중받는 것, 비록 다르더라도 함께할 수 있는 우정이었을 수도 있다.

요청받지 않은 조언이 관계의 틈을 만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보인다. 특히 반복될 때 더욱 그렇다. 말하는 사람은 '옳은' 것을 전하고 있다고 확신하지만, 듣는 사람은 자신이 평가당하고 있다고 느낀다. 비판받는다고 느낀다. 두 감각이 교차할 때 갈등은 깊어진다.

어느 육아 방식이 옳은지는 사실 부차적일 수도 있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의견이 있다. 상대가 다른 선택을 했을 때, 그 선택에 담긴 그들만의 이유가 있음을 인정하는 것. 같은 형편이 아니어도, 같은 방식이 아니어도, 서로의 판단을 존중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우정의 기초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 원문 발췌

너가 애 다 키운것도 아니면서 어떻게 알아?하더군요. 돈이 있어야 한다 이 말 한게 그리 기분 나쁜건지 모르겠네요.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