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드라마의 한 장면이 온라인에서 다시 화제다. 연습생 ***를 두고 마주한 두 가지 판단이 그것으로 보인다. 한쪽은 "앞으로 고를 가능성이 없으니 방출하는 게 맞다"고 명확히 말한다. 팀장이라고 할 수 있는 다른 쪽은 이렇게 대응한다. "기회가 올 수도 있으니 희망을 갖자. 가능성은 있는 거니까 힘내."

들리는 게 다르다. 전자는 차갑다. 후자는 따뜻하다. 그런데 이 장면에 달린 댓글들을 보면, 앞의 냉정한 입장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만만치 않다. 처음에는 이해가 안 간다. 누가 자기한테 "넌 가능성 없으니까 나가"라는 말을 듣고 싶을까.

하지만 그 다음을 생각해보면, 상황이 뒤바뀐다. 개연성 없는 희망을 주는 것이 진정한 친절인가. 이 질문이 댓글창에서 자주 떠올랐던 것 같다. 특히 나이라는 변수를 넣으면 더욱 그렇다. 24살. 앞길이 창창한 나인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 나이를 어디에 쓸 것인가 하는 문제다.

업계를 조금 아는 사람들의 계산이 있다. 아이돌 데뷔 사이클이 대개 2년에서 3년이라는 현실인 것으로 보인다. 지금 이번 런칭에 떨어졌으면, 다음 기회는 2~3년 뒤다. 그렇다면 당사자는 그 기간을 어떻게 버틸까. 새로운 활동도 제약받는다. 계약이 풀리지 않는 한, 다른 회사에 가거나 다른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없다. 업계 용어로 '원사에 묶인다'는 표현이 이를 지킨다.

24살에서 26~27살이 되는 그 시간에 무엇이 쌓이는가. 단순히 나이만은 아니다. 눈에 띄지 않는 오디션들. 데뷔 기회를 놓친 동료들을 보면서 쌓이는 불안감. "과연 나는 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 이런 것들이 해마다 중첩된다.

그런데도 팀장은 "기회가 올 수도 있으니까"라고 말한다. "아직 가능성이 있고". 이 말이 희망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다른 각도에서는 어떨까. 연습생 입장에서 들으면, "기다려. 계속 기다려. 언젠가는"이라는 음성이 계속 울려 퍼지는 것과 같지 않을까.

원문이 이를 명확히 '희망고문'이라고 명명했던 이유가 여기다. 기다려야 하는데, 기다린다고 보장이 없다. 그 불확실성 속에 시간과 청춘을 쏟아붓는 일. 진정성 있는 친절인지, 아니면 형벌인지 구분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 건 그래서다.

반대로 냉정한 입장은 어떻게 읽힐까. 비록 잔인해 보이지만, 명확하다. "넌 이 길에서 가능성이 없다. 가는 게 낫겠다"고 말하는 것. 당사자는 충격을 받을 거다. 하지만 적어도 현실을 명확히 인지할 수 있다. 그리고 24살이라는, 아직도 많은 선택지가 남은 나이에서 다른 길을 모색할 수 있다.

온라인 댓글 반응들을 보면, 이 냉정함이 오히려 진정성 있는 배려라고 읽는 사람들이 많다는 인상인 것으로 보인다. 20대 초반이라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 기간을 사실상 낭비하게 되는 구조가 얼마나 가혹한지를 아는 사람이라면, 말이 된다는 반응인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이 장면은 하나를 말해준다. "사랑한다" "응원한다"는 말이 항상 상대에게 이로운 건 아니며, 냉정해 보이는 결정이 반드시 가혹한 것만은 아니라는 점을 말인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때론 따뜻한 말보다 명확한 현실 직시가, 더 긴 고통을 막는 길이 될 수 있다는 걸.


📌 원문 발췌

24살 앞길 창창한 여자애를 가두고 계속 희망고문 하느니 보내주는 게 맞다. 다음 런칭은 23년 뒤인데 그러면 2627살이 된다.

원본 출처: 루리웹 베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