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1시 반부터 아침 8시까지의 연쇄를 따라가보면, 어느 순간부터 이것이 '당연'이 되었는지 명확해진다. 하루 일정이 정해진 구조가 있다는 뜻인데, 그 구조가 누구에 의해 자동으로 배분되는지가 문제다.
신생아 시기는 타이밍을 읽기 어렵다. 새벽 1시 반, 3시, 5시 반 수유. 아침 7시 남편이 출근하기 위한 식사 준비. 그리고 아침 8시부터 낮 동안 아기가 깨어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계속되는 수유와 돌봄. 이 패턴이 매일 반복되는 가운데, 글쓴이는 자신을 공식적으로 '쉬는 사람'이라고 표현한 것으로 전해진다. 육아휴직 중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휴직'의 의미가 어떻게 해석되는가 하는 점인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직장을 쉬는 상태로 보이지만, 현실의 밤 중 육아는 무급이면서도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영역인 것으로 보인다. 남편은 아침 7시 출근이 있으니 밤의 수유를 피해야 하고, 글쓴이는 휴직 중이니 밤새도록 일어나도 된다는 논리. 이 이분법 속에서 비가시적인 야간 노동은 자동으로 누구의 몫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대화를 시도한 것으로 전해진다. 새벽에 한 번만 일어나달라고 물었을 때, 남편의 대답은 명확한 것으로 전해진다. 아침 일찍 출근하는 자신의 업무 효율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글쓴이 입장에서는 역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는 반응이다. 낮 동안 몇 시간씩 졸음에 떨어져도 아기를 봐야 하고, 누적된 수면 부족은 판단력을 흐리고 신체를 아프게 한다. 산후조리원에서 나온 지 한 달 미만, 단 한 번도 6시간을 연속으로 자지 못했다는 사실 자체가 육체적 극한을 시사하고 있다. 그런데 왜 한 사람의 업무 효율만 보호 대상이 되는가.
주변에서 제안이 들어온다. 분유로 바꾸거나, 유축해서 남편이 밤 한 번을 담당하게 하면 어떨까 하는 조언들인 것으로 보인다. 그 말도 이해는 간다. 하지만 글쓴이에게는 추가 작업으로만 느껴진다. 유축은 단순한 액션이 아니라, 손으로 짜거나 기계를 써서 일정 시간을 들여야 하는 과정인 것으로 보인다. 그것도 이미 수면 부족에 시달리는 몸으로. 시어머니의 말도 들렸다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원래 엄마가 다 하는 거라는 것. 이 한 문장이 수 세대를 거쳐 내려온 기준인 듯하다.
새벽 3시 수유 중이었다. 너무 졸려서 눈물이 났다고 쓰고 있다. 슬픔 때문이 아니라, 순수하게 정신을 잃을 듯한 졸음.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아기를 깨워버렸고, 그 미안함에 또 울었다고. 이 장면 하나가 신체의 한계를 얼마나 강하게 신호하는지 알 수 있다. 감정이 아닌 생물학적 극한의 신호인 셈인 것으로 보인다.
남편이 나쁜 사람인 것은 아니라고 글쓴이는 여러 번 강조한 것으로 전해진다. 낮 시간에 아기를 안아주고 잘 놀아준다. 아이를 사랑하는 것도 보인다. 다만, 언제부터 새벽 수유와 육아가 자동으로 글쓴이의 몫이 되었는지, 그 구조가 과연 언제 바뀔 수 있을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인 것으로 보인다. 이 불균형이 결혼과 출산 이후 당연하게 고착된 것은 아닌지, 아니면 이런 구조 속에서도 부부가 협상할 여지는 있는 것인지 묻는 글의 끝은 답을 구하기보다 현재의 막막함을 드러내는 느낌인 것으로 보인다.
새벽에 글을 쓰다 보니 눈이 계속 감긴다고 적었다. 아기가 깨기 전에 눈을 붙여야 하는데, 또 새벽을 버텨야 한다는 현실이 막막할 따름인 것으로 보인다. 나중에 이 시기가 소중했다고 느낄 수 있을까. 지금 당장은 몸이 버텨줄 수 있는지가 훨씬 더 절실한 질문으로 남아있다.
📌 원문 발췌
한 번은 새벽 3시에 수유하다가 눈물이 났어요. 슬프거나 억울해서가 아니라 그냥 너무 졸려서. 남편 말이 자기는 아침 7시에 출근해야 해서 새벽에 일어나면 업무에 지장이 있다고.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