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5년간 딸의 전문직 시험 준비를 위해 매달 80만 원을 쏟아부었다는 한 엄마가 온라인 커뮤니티에 글을 올렸다. 교재비와 인강, 서울로의 학원 왕복 교통비, 생활비까지 모든 것을 감당했고, 거리상 불편해 집에서 학원까지 눈이 오든 비가 오든 매일 오가며 라이딩까지 했다고 한다. 그렇게 투자한 시간과 비용 끝에 딸은 결국 시험에 합격해 서울에 자리를 잡게 됐다.
그런데 상황이 달라졌다. 어버이날, 엄마의 생일, 아빠의 생일 때 딸은 집에 내려오지 않았고, 겨우 10만 원만 보냈다고 한다. 명절이 되어야 하루 집에 나타났는데, 이때도 동생들에게 한 푼도 챙겨주지 않았다. 엄마가 "너 엄마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르냐", "생일도 한 번 못 와보는 게 너무 하지 않냐"고 말하자, 딸의 대답은 의외였다.
"요즘 그렇게 뒷바라지 해주는 집이 어디 있냐"는 말로 시작한 딸의 반박은 상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7살과 9살 터울로 동생들을 낳은 것을 "첫째에게 아동학대"라 표현했고, 자신은 "집에 할 만큼 한 것으로 전해진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다음과 같은 부분인 것으로 보인다. 딸은 대학 4년을 등록금 걱정 없이 장학금을 받으며 다녔는데, 부모 입장에서는 전문직 시험 준비 기간을 그와 같은 수준의 투자로 본다면 "쌤쌤"이라는 논리였다. 나아가 "자신도 첫째로서 평생 엄마를 도와줬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다"고도 한 것으로 전해진다. 결혼자금을 받을 계획이 있다면 지금부터라도 엄마에게 용돈을 줄 수 있을 텐데, 왜 그러지 않냐는 의문도 던졌다.
엄마는 이 대답을 받고 한없이 허망해한 것으로 전해진다. 자신의 얼굴에 침을 뱉은 기분이라고까지 표현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할 지점은 딸의 말이 틀렸다기보다, 양측이 기대하는 "보답"의 정의 자체가 완전히 어긋나 있다는 것으로 보인다.
엄마는 자신의 지원을 일종의 "투자"로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다. 구체적인 재정 지원, 시간과 노력 투자, 그리고 그것에 대한 자녀의 감사와 회보를 기대했던 것으로 보인다. 반면 딸은 그 지원을 "조건부 사랑"이나 "계약"이 아니라 부모가 당연히 제공해야 할 것으로 받아들였을 가능성도 있다. 더욱이 딸이 주장하는 "첫째 역할"은 무엇인가. 어린 동생들을 챙기고, 부모의 짐을 덜어주고, 모범을 보이는 것—이런 역할을 평생에 걸쳐 해왔다는 게 딸의 입장인 것으로 보인다. 딸 입장에서는 자신도 이미 그 값어치를 톡톡히 해냈다고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 사연은 한국 가족 내에서 "효도"와 "세대 간 기대값" 차이가 얼마나 극명한지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로 보인다. 부모 세대는 자녀를 지원하는 것 자체에 회보를 당연히 기대하는 경향이 있지만, 현세대 자녀들은 그것을 "부모로서의 당연한 책임" 정도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는 뜻인 것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부모는 자신이 한 일의 대가를 못 받는다고 느끼고, 자녀는 부모의 기대가 부담스럽다고 느낀다.
그렇다면 정말 딸의 논리가 얄밉기만 한 건가. 아니면 부모와 자녀가 모두 각자의 입장에서는 타당한 주장을 하고 있는 건가. 이 질문에 답하는 것이 이 사건의 해결책일지도 모른다.
📌 원문 발췌
자기는 엄마한테 물론 고맙지만 그만큼 자기도 첫째로서 평생 엄마 도와줘서 쌤쌤이라고 생각한다고. 월 80 매달 준 게 아깝다면 첫째노릇에 대학 4년 장학금 받은 것과 전문직 준비를 같다고 생각하라고.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